[퇴근길 문화] 디바서 친근한 누나로…독보적 브랜드 ‘조수미’ 그녀의 성공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5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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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공연 일정 속에서도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일은 꼭 챙긴다. 어려운 시절 해외생활을 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서” IMF 직후 대통령취임행사 때는 공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사진가 최종수
빡빡한 공연 일정 속에서도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일은 꼭 챙긴다. 어려운 시절 해외생활을 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서” IMF 직후 대통령취임행사 때는 공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사진가 최종수
올 화이트 바지 정장에 완벽하게 정리된 손톱, 흐트러짐 없는 화장과 헤어…. 23일 오후 경기 군포시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소프라노 조수미는 밀랍인형 같았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막 귀국한 사람치곤 외모도 태도도 해사하고 말쑥했다. 뒤편 테이블에 어지럽게 널린 파우치, 샌드위치, 물병이 ‘자기관리 화신’의 노고를 조용히 다독이고 있었다.

조수미는 주 근거지인 로마에서 출발해 필리핀에서 유네스코 자선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다. 31일 귀국 전까지 군포(26일), 제주(29일), 서울(31일)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31일 오후 7시 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치는 듀엣공연 ‘디바&디보’가 핵심이다.

‘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미이다.’

1998년 소프라노 조수미는 음악잡지 ‘객석’에서 이렇게 썼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이 ‘성미’는 변함없는 듯했다.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해서” “남 의식 안 하고” “감정에 충실하게”…. 1시간 동안 그가 쏟아낸 언어엔 이거다 싶으면 재지 않고 직진하는 돌격정신이 묻어났다.

국내 첫 동물보호교육센터인 서울 서교동 ‘카라’의 더불어숨센터에 방문한 조수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이사인 그는 2011년 콘서트 수익금 1억5000만 원을 건립 기금으로 기부했다. 카라 제공
국내 첫 동물보호교육센터인 서울 서교동 ‘카라’의 더불어숨센터에 방문한 조수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이사인 그는 2011년 콘서트 수익금 1억5000만 원을 건립 기금으로 기부했다. 카라 제공
조수미는 잘 노는 전교 1등 같다. 배꼽티 차림으로 기자회견에 등장하고(1992년) 앙코르 무대에서 말춤을 추는 등(2012년) 개구진 모습으로 음악계 안팎을 휘저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사회공헌’. 장애인, 동물보호, 예술교육에 특히 마음이 뜨거워진다.

●어릴 적 장애인 친구 생각에 ‘휠체어 그네’ 국내 도입

조수미는 휠체어 그네를 2014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국내엔 장애인 놀이시설 관련 법령이 없다”며 “장애인 복지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2016년 9월 세종누리학교 휠체어 그네 기증행사. 동아일보DB
조수미는 휠체어 그네를 2014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국내엔 장애인 놀이시설 관련 법령이 없다”며 “장애인 복지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2016년 9월 세종누리학교 휠체어 그네 기증행사. 동아일보DB
“어릴 때부터 약자들에게 마음이 쓰였고, 꽤 오래전부터 조금씩 동물 장애인 아동 등의 보호활동을 해왔어요. 한동안 그분들을 일부러 외면했어요. 감정 절제가 안 돼 펑펑 울다 보면 컨디션이 엉망이 됐거든요. 40대 이후에 그분들과 대면할 용기가 생겼고, 최근 더 많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듭니다.”

―휠체어 그네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지요.

“2012년쯤이었나. 호주에서 처음 휠체어 그네를 접하곤 옛 친구를 떠올렸어요. 다리가 불편했던 그 친구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놀이터 한구석을 지켰죠. 수소문 끝에 휠체어 그네를 제작해 5년째 각 지역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 개회식 무대에도 서게 됐지요.”

―애견인으로서 동물보호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개고기 반대 발언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반려견과 함께했고 지금도 반려견 신디, 로이, 샤넬과 함께 지내요. 국내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명예이사로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유기견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국내 보호소는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사람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은 아니잖아요. 동물복지를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기부 금액도 꽤 될 것 같습니다만.

“금액은 알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지구를 떠나고 싶기에 원하는 걸 할 뿐이에요. 커리어든, 사회공헌 활동이든 사심은 없습니다.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이나마 관심을 일깨울 수 있어서예요.”

―세간의 평가에 초월한 강철멘털 같습니다.

“성악가는 심장에 거짓이 깃들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없어요. 그래서 감정에 순응하는 겁니다. ‘조수미’는 ‘조수미’의 베스트 프렌드예요. 여장부 조수미가 한없이 여린 조수미와 부딪히고 화해하며 단단하게 성장해 왔어요. 그게 제 인생입니다.”

●정치인도 아닌데….

조수미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예술교육 시스템, 후학 양성, 통일, 여성 등 거미줄처럼 관심이 뻗친다. 정치인도 아닌데 자꾸 ‘이건 저렇게, 저건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학 양성이 최근 새로운 관심사라고 누군가가 귀띔하더군요.

“후학 양성이라기엔 거창하고요. 가진 걸 후배들에게 나누는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10여 년 전부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간간이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어요. 음악적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실전 노하우 같은 것들을 알려주죠. 제게 선생님 자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예술교육 시스템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 겪은 노하우를 집대성해 정리하고 싶습니다.”

―음악의 힘은 무한한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어떻게 그려낼지 늘 고민합니다. 예컨대 호주 공연에서 밝은 느낌의 ‘국가 찬가’를 들었는데, 우리도 엄숙한 애국가 외에 경쾌한 찬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즐깁니다. 통일 문제도 그 중 하나이지요.”

―해외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회 문제와 해결책이 동시에 보이나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느끼는 문제는 속도예요. 한국은 사회가 너무 빠르고 바쁘게 굴러가다 보니 변화 자체에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유럽에서 주로 살아온 저는 그들의 삶을 대체로 이해하는 편이에요.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빠른 변화 속에 놓치고 지나치는 요소들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요.

“가족의 의미, 약자에 대한 배려, 교육의 방향, 삶의 의미…. 여러 면에서 우리와 다르죠. 고국을 찾을 때마다 빠른 템포에 발을 동동 굴리다가 뭔가 잊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탁월한 전략가?

조수미라는 브랜드는 후퇴가 없었다. 전천후 디바에서 친근한 이웃집 누나로, 한국 홍보대사에서 여성 리더로. 기존 미덕을 간직한 채 가치를 한 겹씩 더하며 30년 넘게 장수했다. 철 바뀌면 옷장 정리하듯 자연스러운 변신도 마음의 소리에 따른 것일까.

―브랜드 전략이랄까요. 큰 틀에서 향후 행보는 오롯이 혼자 결정하는지요.

“해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미디어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이 전부인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종종 매니저 일을 하는 남동생과 소통합니다. 전반적 사회 분위기가 제가 하고자 하는 일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주로 토론하지요. 예컨대 세월호 사건, 미투운동 등은 외신을 통해 접하기에 정확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런 다음 지인들과 전화 통화나 티타임을 하며 상황 파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다음은요.

“적절한 문화 행보를 고민하지요. 노래를 하는 사람이 사회·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이 삶의 질이 주 관심사이고 문화는 삶의 질과 가장 밀접한 영역이죠.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며 국가의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어요.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여성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여성 문제에도 관심이 있나요.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쟁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쿨’해야 합니다. 저도 질투를 합니다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내가 더 단단해지더군요.”

―‘쿨’요?

“상대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진정한 성장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외면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그라집니다. 감수성과 나의 생각, 느낌을 신실하게 돌봤으면 합니다.”
―유럽에서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나요.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요. 유럽 진출 초기에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탈락했고 독일어를 못해 마스터클래스에서 쫓겨났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엔 충격이 컸어요. 하지만 유럽 사회는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을 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제가 성공한 건 포기하지 않고 재능을 갈고닦았기 때문이에요.”

●지독한 완벽주의자

그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공연 전엔 ‘호콕’(호텔에만 머무름)하고 킥복싱과 ‘홈트’(유튜브 보며 집에서 운동)로 체력을 다진다. 공연 전엔 완벽주의 기질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무대, 의상, 객석 의자까지 제대로 각이 잡혀야 안심이 된다. 허름한 야외공연장 객석 의자가 거슬려 방석 수천 개를 산 적도 있다.

―평생 절제하는 삶, 힘들지 않나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8시간 동안 방에 가둬 두고 피아노 연습을 시켰어요. 누구도 대신 연습해주지 않고, 정상 자리를 유지하려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였습니다.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아요.”

―무대 밖에서는 어떤가요.

“비슷해요. 뭐든 풀세팅을 선호하죠. 집에서 밥 한 끼를 먹어도 테이블 세팅을 갖춰요. 손님도 왕처럼 대접하죠. 살아온 모양처럼 몸이 굳었는지, 어떤 의사가 말하길 제 어깨가 돌처럼 딱딱하대요.(웃음)”

―어머니 꿈이 성악가셨다죠.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요.

“7년째 치매로 고생하고 계신데, 거의 매일 저녁 식사 전에 전화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페라 아리아를 몇 곡이나 흥얼거리실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하셨죠. 로베르토 알라냐를 제일 좋아하셨는데, 이번 공연에 모실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알라냐는 어떤 동료인가요.

지난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조수미와 ‘제4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둘은 한 살 차이인 데다 1992년 영국 코번트가든 무대에서 함께 데뷔해 친분이 깊다. 조수미 트위터 캡처
지난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조수미와 ‘제4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둘은 한 살 차이인 데다 1992년 영국 코번트가든 무대에서 함께 데뷔해 친분이 깊다. 조수미 트위터 캡처
“무대 위 동물이죠. 끼를 타고났어요. 무대 밖에선 소탈하고 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저와 비슷한 면이 많아요. 사실 알라냐의 전 부인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더 친해서 한동안 어색하게 지내다가 다시 가까워졌어요.(웃음)”

깔깔 웃고 대책 없이 울다가 무대 위에선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조수미는 천생 예술가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반쪽 조수미였다. 그는 인터뷰 이슈를 소속사 직원에게 직접 카톡으로 주문할 만큼 빈틈없었다. 예술가의 감성과 최고경영자(CEO)의 냉철함을 동시에 품은 여전사 같았다.

“러시아, 브라질, 현대음악 등 음악 욕심은 끝이 없어요. 언제 하고픈 걸 다 할지, 휴.” 그의 인생 ‘챕터2’가 닻을 올렸다.

이설 기자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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