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부하 직원의 감정과 일상, 아직도 지배하려 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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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1부 차장
김용석 산업1부 차장
직장 내 성희롱은 아랫도리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다. 윗도리, 그것도 제일 위에 달린 머리에서 나오는 문제다. 미국 학자 피츠제럴드의 1988년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10건 중 7건(70%)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권력을 표현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성희롱은 대체로 충동적 행동이 아니라 머리로 계산해 권력을 행사한 결과라는 뜻이다. 성희롱이 발생하기 쉬운 회사는 권력구조와 작동방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투는 일탈한 개인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우위 기존 권력구조가 빚어낸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다. 그게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 고착화된 권력의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남자들은 여자와 불편한 접촉을 피하는 ‘펜스 룰(Pence Rule)’을 택한다. 일부 남자들이 여성을 상대로 펜스(Fence)를 치는 게 안전하다고 여기는 건 아직도 권력이 펜스 안쪽, 자신 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꾸기는커녕 고착화하는 일이다. 권력구조가 바뀌는 데 적응하지 않고 단순히 펜스 안쪽에 숨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그 너머로 손길을 뻗칠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한국에서 미투가 본격화된 지 112일째. 폭로는 잦아들었지만 일터에선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미투 이후 바뀌는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머리에 새겨야 할 세 가지를 꼽아봤다.

첫째, 당신에겐 부하 직원의 감정과 일상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당신의 썰렁한 농담에 부하 직원이 항상 웃는 건 당신의 재치 때문이 아니라 상급자에 대한 예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부하 직원의 호감(好感)은 당신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당신의 취향을 부하에게 강요하거나, 부하의 일상을 점유하는 것, 예컨대 금요일 저녁 상습적으로 일거리를 던져주며 “월요일 아침에 보고하라”는 건 조직이 당신에게 준 권력의 용도와 한계를 오해하는 일이다. 위험 신호 1단계다.

둘째, 회사 내에서 여자라서 해야 할 역할이라는 건 거의 없다. 한 고등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교장을 모시고 버스로 워크숍을 갔다. “분위기 좋게 하자”며 여교사를 남자 교장 옆자리에 앉혔다. 심영희 한양대 특임교수는 이런 일이 여성을 여성의 자리에 잡아두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한다. 여성의 역할을 ‘직장의 꽃’, ‘사무실의 아내’로 왜곡하면서 평가 절하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해 온 역할에 진출하면서 기존 권력의 의도(여성은 여성의 자리에 있으라)에 도전한 여성이 성희롱을 당한 사례가 많다. 고루한 가족제도에서 학습된 성 역할 고정관념을 직장에 투영해선 안 된다. 자꾸 후배 여직원을 여동생같이, 신입 여사원을 딸같이 여기고 싶다면, 위험 신호 2단계다.

셋째, 권력 오남용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가 유력한 해결책이다. 김수한 고려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한 조직일수록 성희롱이 적다. 반대로 조직 일체감과 단합, 획일성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성희롱 성차별이 많다. 사회 심리적 동종선호(同種選好)는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프로토콜이 맞는 동성(同性), 동종이 협업에 효율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끼리, 같은 성향을 갖는 사람끼리만 권력을 독점한다면 당신의 회사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버리고 효율성에만 기대는 곳일 공산이 크다. 여성에게 권력을 전혀 나눠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회사는 이미 위험하다. 위험 신호 3단계. 공룡처럼 뒤처질 그 회사에서 떠날 준비를 하라.
 
김용석 산업1부 차장 yong@donga.com


#직장 내 성희롱#미투 운동#펜스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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