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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잘’ 놀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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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잘’ 놀고싶어요.

신규진 기자 , 김자현 기자 입력 2018-05-16 03:00수정 2018-05-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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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기만 한 스라밸]<중> ‘놀이 불능’에 빠진 초등생들
크게보기11일 서울 양천구의 학원가 카페에서 우진이가 수학학원을 가기 전 비는 시간을 이용해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디를 가지….’

영어학원이 끝난 건 오후 3시 50분. 다음 논술학원 시간까지 50분이 남았다. 40분 걸어서 집에 갔다 오는 것보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한다. 200m만 걸으면 작은 공원이 있다. 하지만 뛰어놀 친구가 별로 없다. 땀나면 수업 듣기도 힘들다.

“어제 ‘코노’를 갔으니 오늘은 PC방 갈 차례네.”

함께 영어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중얼거렸다. 코노는 ‘코인노래방’의 줄임말이다. 500원에 노래 두 곡을 부를 수 있다. 할 수없이 또 PC방에 왔다. 올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다. 학원수업 시작 15분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수시로 모니터 오른쪽 밑에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일 기자가 지켜본 우진이(가명·12)의 방과 후 일정이다. 논술학원이 끝나고 오후 6시 10분 다시 만난 우진이는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진이는 한 인기 유튜버(개인방송자)를 보여주면서 “시간 때우기에 딱 좋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30분가량 거리를 떠돌던 우진이는 수학학원이 있는 건물 1층의 카페로 들어갔다. 우진이는 “남는 시간에 어떻게 놀지 생각이 안날 땐 잠이라도 자야 한다”며 기자에게 “15분 후에 깨워 주세요”라고 말한 뒤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 중고교생보다 부족한 초등생 휴식시간

우진이는 “마음 놓고 쉬는 건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진이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초등학생이 조금 쉬고 많이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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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한국 초등생의 평일 휴식시간은 48분. 각각 49분, 50분인 중고교생보다 적다. 평일 공부시간도 195분으로 초등생이 가장 많다. 주말 휴식시간도 초등학생이 171분으로 가장 적다. 지난해 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전국의 초중고교생 64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행복생활시간조사’ 결과다.

‘진짜 휴식’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 아이들은 학원가는 시간을 이용한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반쪽짜리 휴식이다. 그래서 학원이 밀집한 서울의 일명 ‘쓰리동(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PC방이나 코인노래방. 카페가 늘 성업 중이다.

10일 오후 4시 반 대치동의 한 PC방에서 만난 한모 군(12)은 저녁식사로 전자레인지에서 가열한 냉동만두와 콜라를 먹고 있었다. 오후 5시 한 군은 “아! 짜증나”를 외치며 서둘러 PC방을 나가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놀이도 학원에서 배운다. 9일 중계동의 한 스포츠클럽에는 아이 4명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단체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체육관 한구석에서 줄넘기만 만지작거리던 박모 양(10)은 “엄마는 나에게 줄넘기를 하고 놀라는데 솔직히 재미없다. 혼날까 봐 말은 못하지만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근처 학원가를 걷다 보면 ‘동요스쿨’ ‘독서코칭’ ‘초중생 체육’ 등을 소개하는 학원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원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 공부 압박이 낳은 ‘휴식 포비아’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공부와 삶의 균형)’이 무너진 아이 중에는 ‘놀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균형추가 공부에 맞춰져 있다 보니 휴식이나 여가가 주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올 4월 서울의 한 아동상담센터를 찾은 김재영(가명·11) 군은 “엄마가 쉬라고 얘기해도 나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김 군은 자유시간에도 집에서 허공을 쳐다보거나 시키지도 않은 숙제를 한다. “공부하지 말고 놀아도 된다”는 아빠 엄마의 말에도 김 군은 책을 놓지 않는다. 어떨 때는 “숙제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센터의 상담사는 “(김 군이) 노는 시간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길들여져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사라지면서 한국의 많은 아이가 ‘놀이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놀이의 기본은 ‘자율성’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놀아보지 않고 주어진 일과만 수행한다면 결국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김자현 기자
#스라밸#놀이 불능#초등생#공부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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