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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빤지 다리 마을’ 판문점은 어떤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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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빤지 다리 마을’ 판문점은 어떤 장소

뉴시스입력 2018-04-22 09:27수정 2018-04-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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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두 개의 주소를 갖는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그리고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점이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52km, 평양에서는 147km, 개성공단의 경우 8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공동경비구역으로 남측과 북측이 한데 어울려 경비를 섰지만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 이후 대치 상태로 근무한다.

도끼만행 사건은 유엔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를 빼앗아 살해한 일이다. 사실상 북미 전면전 직전까지 갔던 이 사건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가 군사분계선에 따라 분할경비로 바뀌었다.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있던 북한군 4개 초소도 철거됐다.

현재 판문점은 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국제적 장소로 떠올랐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문을 발표하면 ‘판문점 선언’으로 불릴 가능성도 크다.

최근 주목도와 달리 판문점의 초기 모습은 초가집 몇채가 전부였던, 행정구역으로도 주목받지 못한 작고 외딴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였다. 널문리란 마을 이름도 널빤지로 이뤄진 문짝과 다리가 있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한국전쟁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1년 10월. 유엔군과 인민군은 정전회담을 논의할 마땅한 장소를 찾던 중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널문리에 주목한다. 북한군은 1951년 10월 7일 새로운 회담장소로 널문리 주막마을을 제의했고, 국제연합군이 이튿날 동의했다.


1951년 10월 22일 널문리에 천막을 치고 첫 연락장소 접촉을 시작하면서 판문점 역사가 시작된다. 중국 측이 널문리를 한자 표기로 ‘판문점(板門店)’이라 표현하면서 새로운 지명으로 굳어졌다.

공동경비구역 중심에는 7개의 단층 건물이 동서로 늘어서 있다. 가운데 있는 것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이다. 유엔군사령부는 파란색 3동, 즉 임시(temporary)의 약자인 T를 따서 T1으로 통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로 통하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T3로 통하는 공동 일직장교 사무실을 관리한다. 인민군은 회색 회담장 4동을 관리하고 있다.

회담장 안에 놓인 회의용 탁자는 평범한 테이블처럼 보인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에 의해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반으로 나누어진 탁자다. 분단의 비극은 테이블도 반으로 가른다.

평화의 집은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대북 특별사절단을 이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6일 오후 방북 성과 브리핑을 열고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남북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JSA 남쪽에 있는 평화의 집은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예상하며 1989년 12월 19일 준공했다. 총 3층 석조건물로 1층에 기자실과 귀빈실이 있다. 2층은 회담장과 남북회담 대표 대기실로 구성됐으며 3층은 대회의실과 연회실이 있다.

자유의집은 원래 1965년 9월30일 준공된 팔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된 2층 건물이었다. 이 건물이 오래되자 1998년 7월 9일 연건평 1437평의 4층 건물로 새롭게 지어진다. 1층은 로비와 기자실 및 편의시설, 2층은 사무실·회의실·대기실, 3층은 남북 연락사무소·남북 적십자 연락사무소·대회의실, 4층은 전망대와 다용도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JSA 북쪽에 있는 판문각은 1964년에 지은 육각정을 헐고 1969년 9월 2층 건물로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다. 1994년 12월 증축한 3층 석조 건물이다. 이 곳에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가 들어서 있다.

통일각은 평화의 집에 대응해 북한이 1992년 준공한 연건평 460평의 지하1층 지상 1층 건물이다. 북한은 이 곳에 남북 연락사무소를 두며 접촉 장소로 삼고 있다. 2018 남북정상회담 실무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렸다.

판문점 인근에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72시간의 다리’란 독특한 이름의 두개의 다리가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원래 이름은 널빤지 다리가 있다는 뜻의 ‘널문다리’였다. 한국전쟁 중 붙잡힌 남북한 포로들이 정전협정 조인 후 이 다리를 통해 교환되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bridge of no return)’라는 비장한 이름이 붙었다.

포로들은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이름을 붙였고 실제 명칭으로 정착됐다. 유엔군은 1976년 도끼만행 사건 이후 이 다리의 통행을 금지했다.

72시간 다리는 1976년 당시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이 사흘만인 72시간 만에 새 다리를 세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는 1976년 8월 도끼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북측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판문점을 거친 주요 사건으로는 소련 관광 안내원 마투조크 귀순(1984년 11월 23일), 임수경 학생·문규현 신부 판문점 귀환(1989년 8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판문점 경유 방북·귀환(1994년 6월 15일~6월 18일), 정주영 전 현대회장의 소떼 1001마리 인솔 방북(1998년 6월 16일·1998년 10월 27일) 등이 있다. 당시 정 회장은 남북 민간 차원의 합의를 통해 판문점을 지나갈 수 있었다.

판문점에서 발생한 최근 주요 사건으로는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병사 오청성의 귀순이 있다. 그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이를 저지하려는 북한 육군 병력의 총격을 받은 채 우리 군에 구조됐다.

오청성은 11월 13일 오후 3시경 지프를 몰고 72시간의 다리를 건너 회담장 근처 초소 인근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지프 바퀴가 도랑에 빠지자 차에서 내려 남쪽을 향해 뛰는 과정에서 북한 경비병의 사격에 총상을 입는다.

이후 국군에 구출되어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오청성은 이국종 교수의 수술로 기적적으로 회생한다. 판문점에서 총격이 일어난 건 1984년 11월 이후 처음이며 북한은 오청성 귀순 이후 72시간 다리에 통문을 설치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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