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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공존]“내가 장애인이 될 줄이야” 패럴림픽 영웅 신의현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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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공존]“내가 장애인이 될 줄이야” 패럴림픽 영웅 신의현의 호소

서형석 기자 입력 2018-04-19 18:07수정 2018-04-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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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가 19일 충남 공주시 자택 앞에서 자신의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있다. 12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신 선수는 1년가량 재활을 거친 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지금은 교통문화를 바꾸고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의현 선수 제공
장애를 이겨낸 패럴림픽의 영웅은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두 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된 날이다. ‘왜 한 눈을 팔았을까’ ‘왜 다른 생각을 했을까’라는 후회는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옥죄고 있다.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크로스컨트리 선수 신의현 씨(38·창성건설)의 이야기다.

“내가 장애인이 될 줄이야…”

17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신 씨를 만났다.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그는 “패럴림픽 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 인터뷰가 이어졌고, 아내의 고향인 베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부도 만났다. 하지만 자세히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신 씨는 “내가 장애인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며 2006년 2월 그날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고가 일어난 건 대학 졸업식 전날 밤이었다. 식품유통업체에 취직했던 그는 1.5t짜리 트럭을 몰고 밤길을 달리던 중이었다. 잠시 한 눈을 팔았다. 졸업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정도의 찰나의 순간이 지났다. 트럭은 도로 가장자리에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이받았다. 엔진이 운전석으로 밀려들어왔다. 두 다리가 짓눌렸다. 짓눌린 두 다리는 병원에서 절단해야 했다. 그나마 안전띠를 매고 있어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목숨만 건졌다. 그는 “평소 안전띠를 매는 습관 덕분에 최악은 피했다”고 말했다.

사고 1년 후 그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충남 공주의 시골마을에 살다보니 자가운전이 아니면 외출이 어렵다. 다행히 의족 덕분에 가속 및 제동 페달을 밟는데 큰 지장이 없다. 그는 1년에 3만 ㎞를 운전한다. 개인일정은 물론 대회와 훈련이 있을 때도 직접 운전한다. 딸(11), 아들(8)과 함께 나들이도 다닌다.

12년 전 뼈아픈 부주의 탓에 그의 운전습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조금이라도 졸리면 바로 졸음쉼터나 휴게소를 찾는다. 제한속도는 반드시 지킨다. 모임에 참석한 지인이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고 운전대를 잡으려 하면 직접 나서서 대리기사를 불러준다. 어디를 가더라도 교통안전을 눈여겨 본다. 신 씨는 “대회 참가나 훈련을 위해 미국과 유럽에 가보면 보행자 앞에서 모든 차량이 약속한 듯 반드시 멈춘다. 하지만 우리는 운전자가 오히려 보행자에게 경적을 울린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장애인 두 번 울리는 교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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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사고에 대한 신 씨의 후회는 자신의 고통 탓만은 아니다. 만약 사고 당시 다른 차량이나 사람이 있었다면 그 고통이 자신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찔함 때문이다. 그래서 신 씨는 교통사고 후 자연스럽게 “보험처리 합시다”라고 말하는 한국의 문화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른 사람을 숨지게 하면 그건 살인이다. 하지만 가해자는 짧은 징역에 집행유예로 석방까지 된다. 과연 누가 법을 겁내겠냐”라고 반문했다.

사고 후 교통문화에 눈길이 가면서 신 씨는 자연스레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쏟게 됐다. 자신을 비롯한 교통사고 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이동권마저 갖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농어촌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콜밴은 커녕 택시 잡기도 힘들다. 대도시에 나오면 흔한 계단이나 경계석 하나를 넘기도 힘겨웠다. 그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장애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짜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장애인은 버스 한 번 타기도 힘들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서 8개 특별·광역시의 저상버스 보급은 지역마다 차이가 컸다. 인천과 울산은 서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농어촌이 많은 도(道) 단위 지역은 훨씬 열악하다. 휠체어는 물론 신 씨처럼 의족 보행을 하는 장애인도 버스 계단을 오르기는 힘겹다.

그는 자신처럼 한 번의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더 이상 교통 탓에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신 씨는 “거창한 게 아니다. 우리의 교통문화에 사람을 먼저 생각해주는 작은 배려가 있다면 장애인도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사고에 울고 이동에 우는 교통 장애인

지난해 기준 국내 장애인은 138만2760명이다. 이 가운데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된 ‘교통사고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지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한해 등록하는 후천적 장애인의 90%가량이 교통사고로 후유장해(後遺障害)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교통사고로 후유장해 보험금을 받은 사람은 1만7635명. 하루 평균 50명꼴이다. 2014년 이후 매년 늘고 있다.

교통사고 장애인은 사고 피해와 불편한 교통 체계라는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은 이들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통 시스템의 문턱은 이들에게 여전히 높다.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은 지난해 하루 평균 7만5181명이 오갔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서울시내 비(非)환승역 가운데 이용객이 가장 많다. 하지만 이 역 9개 출구 가운데 휠체어를 탄 사람은 세종문화회관 뒤 1, 8번과 광화문광장의 9번 출구만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출구는 엘리베이터도, 휠체어리프트도 없다.

1, 8, 9번 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 쪽으로 일을 보러 가려면 적어도 세종대로 편도 5차로는 한번 건너야 한다. 평소 차량과 보행자가 많은 곳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건 또 다른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과 같다. 다른 지하철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처럼 교통시스템이 교통사고장애인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보니 움직일 엄두를 잘 내지 못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조사’에 따르면 광역시·도를 오간 횟수가 연간 5회도 되지 않는 장애인이 전체의 72.4%나 됐다.

현재 국회에는 ‘저상버스 확대를 위한 정부 지원 의무화’, ‘이동편의시설 인증 의무화’ 같은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19건이나 계류돼 있다. 언제 처리될지 감감무소식이다. 2006년 시행된 이 법이 명시한 경사로 설치, 보행로 폭 확보 등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돼있지 않다.

영국은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일본은 ‘교통배리어프리법’ 시행으로 모든 시내버스에는 저상버스만 쓰도록 했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국가교통안전연구센터장은 “해외처럼 추가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보도와 건물 출입구의 턱을 없애는 등 장애인 교통권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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