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피플] 밴드 ‘산울림’ 리더 김창완에 ’리더의 조건’ 물었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3일 15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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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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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간판 밴드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64).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멀티 엔터테이너’다. 왕성한 음악활동은 물론 TV드라마나 영화에서 개성 넘치는 명품연기를 선보이는 연기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인물정보에 따르면 그는 46장의 음반을 냈고 방송 45건, 영화 20건에 출연했다. 저서도 13권이나 된다. 수상실적도 눈부시다. 가수와 연기자, 라디오 DJ로 각각 굵직한 상을 여럿 받았다.

특히 그는 뮤지션으로 빛났다. 1977년 산울림 데뷔앨범 ‘아니 벌써’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앨범은 음악전문잡지나 웹진, 음악전문 케이블TV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100곡’을 선정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상위에 랭크되는 명반으로 꼽힌다. 산울림은 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거듭했다. 묵직한 베이스기타 연주가 압권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실험했다. 발라드곡 ‘청춘’에선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이라는 시적인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다. ‘산할아버지’ ‘어머니와 고등어’에선 유년의 기억을 즐겁게 혹은 아련하게 추억했다. 요즘도 그는 매년 전국 순회공연 등을 펼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후배 대중 음악가들은 그런 그를 ‘음악적 스승’으로 꼽는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김창완은 군사정권이 청춘을 짓누르던 시대에 혁신적인 록 사운드로 청춘성을 회복시켜줬고, 민주화 시대엔 ‘어머니와 고등어’와 같은 음악으로 현대인을 위로해준 ‘한국 대중음악계의 리더’”라고 평가했다.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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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는 리더론을 묻는 질문에 당혹스러워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에서 딱 떨어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몇 번에 걸쳐 리더에 대한 본인의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보내왔다.

그는 리더를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하고 무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최근 국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성추행 성폭행 등과 같은 비도덕적인 일들에 연루되면서 잇따라 추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깊은 울림이 있는 지적이었다.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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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삶의 향기’를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진심을 전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은은히 퍼지는 삶의 향기는 위대한 설득이며 감동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디지털문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 향기는 일종의 비상구며 리더는 탈출구의 안내자가 될 수 있죠.”

‘사이클 마니아’인 김 씨는 여럿이 함께 하는 자전거 타기에서 리더십을 찾기도 했다. 먼 길을 갈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선두에 서서 달리기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다. 상황에 따라 여러 사람이 번갈아 가며 선두에 서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줘야 한다. 세상사에 이런 과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제왕적 인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로 다른 사회적 가치를 배우고 채우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이 때 각각의 리더는 다른 가치, 삶의 향기를 갖고 있어야죠.”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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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뒷방노인(모든 것을 잃고 물러난 노인)’처럼 묵묵히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리더십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과거 남존여비 시대에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 할머니의 존재감은 컸습니다. 힘없는 손, 희미한 미소만으로도 우리에게 용기를 줬죠. 세상에 나폴레옹(같은 영웅)이 들끓어도 조용히 갑옷을 입혀주던 할머니가 소중한거죠. 이런 점에서 모든 어머니는 훌륭한 리더인 셈이죠.”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그가 펴낸 에세이집 ‘안녕, 나의 모든 하루’를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마음이 답답할 때 너른 들판이 돼 주고, 살기 팍팍할 때 시원한 강물이 돼 주는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어머니 같은 리더십은 어쩌면 그가 진정 원하는 리더의 참모습일지 모른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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