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강한 나라’ 내세워 선거로 장기집권… 스트롱맨들 新독재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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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장기 집권 시대’가 도래했다. 중국 러시아 독일 일본과 같은 영향력이 큰 강대국들에서 속속 장기 집권이 현실화되면서 민주주의 퇴조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장기 집권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국민의 반대를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통해 진압하던 20세기 독재자들과는 뚜렷이 비교가 된다. 일본과 독일처럼 민주주의적 선거제도가 잘 작동하는 나라들에서도 국민들이 통치자의 장기 집권에 찬성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나라들조차 장기 집권이 가능한 이유를 단순히 정적 제거나 언론 탄압 때문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 장기 집권자들은 대개 다른 국가보다 나은 경제 성과 및 정치적 안정을 내세우며 자신들이야말로 외부의 위험에 맞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적임자임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국민이 이들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국민의 밥그릇부터 지켜라”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장기 집권에 성공한 통치자들은 대개 확실한 경제 성과를 거뒀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은 언제든지 다른 나라와 자국의 경제성장을 비교할 수 있다. 인터넷 덕분이다. 세계 평균보다 밑도는 경제 성과를 낸 지도자가 장기 집권에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2016년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7.2%를 달성했다. 세계 평균 성장률 2.6%를 크게 웃돈 수치다. 중국의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는 평균 30% 내외로, 미국과 유로존 및 일본의 기여도를 합한 것을 뛰어넘는 세계 1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아베노믹스’를 강하게 밀어붙여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시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집권 10년간 연평균 4.5%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터키를 제조업 및 수출 강국으로 키워냈다. 2001년 터키의 경제성장률이 ―5.7%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반전이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헝가리를 조기 졸업시켰으며 성장률을 크게 높이고 실업률을 크게 낮춰 호평을 받았다.

② 공포와 두려움이 ‘스트롱맨’을 부른다

“중동은 보다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2차 ‘아랍의 봄’을 앞두고 있으며 이슬람국가(IS)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할 것이다.” 이달 초 요르단 외교장관 출신인 마르완 무아셰르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부총재가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혁명 이후를 정의한 말이다.

독재자가 사라진 후 누구도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혼란에 빠진 아랍의 현실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이 능사가 아님을 일깨워줬다. 통치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자신을 국가의 안정을 지킬 ‘스트롱맨’으로 포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시진핑 주석은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이 되려면 강력한 1인 통치가 필수다”라고 주장한다.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해 유럽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대항마 이미지로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국민에게 중국과 북한을 외부 위협으로 주지시키며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③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파고드는 신(新)독재

20세기 후반 세계에는 거대한 민주주의 바람이 불었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1927∼2008)가 정의한 ‘민주주의 제3의 물결’ 시대다. 2000년 기준으로 189개 독립국 중 121개가 민주국가로 분류됐는데, 이 중 60∼80개국이 직전 25년 안에 민주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들은 최근 각종 위기에 노출됐다. 민주주의 이론의 세계적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해 민주주의가 2006년경부터 급격히 퇴보했다. 이제는 모든 학자가 민주주의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조차 2011년 부를 독점하는 1%에 대항해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벌어졌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믿음도 동시에 흔들렸다.

이런 가운데 독재에 대한 반감은 과거보다 희석되고 있다. 독재 국가라는 비판을 받는 중국과 러시아에서조차 대규모 피의 숙청이나 정치수용소 같은 강압적 통치는 사라지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용인된다.

중국처럼 세계 패권을 노리는 국가는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체제가 우월하다며 세계에 끊임없이 설파한다. 대표적으로 왕샤오링(王曉玲) 중국 사회과학원 부연구원은 신화통신 등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이상적 지도자를 선출하지 못하는 서구식 선거 제도의 폐단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방에서부터 능력을 쌓아 최고 지도자가 되는 중국식 정치 제도는 안정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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