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한 동료 가족에 생활비… 환경미화원 1년 위장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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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독거남… “말다툼하다 살인”
시신 쓰레기봉투 담아 버린뒤 동료 행세하며 휴직계 제출
피해자 신용카드 쓰다 들통
경찰 “돈 얽힌 계획살인 가능성”


15년간 함께 일한 동료를 살해한 환경미화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시신을 대형 비닐봉지에 넣어 태연히 쓰레기장에 버렸다. 그러고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1년 가까이 숨진 동료인 양 행세했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살인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전북 전주시의 한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이모 씨(50)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해 4월 4일 오후 6시 반경 전주시 완산구 자신의 원룸에서 동료 Y모 씨(59)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다. 이 씨는 경찰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Y 씨가 내 가발을 잡아당기며 욕설을 해 홧김에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이 씨는 범행 다음 날 오후 6시경 Y 씨의 시신을 검은색 비닐봉지 15장으로 겹겹이 쌌다. 일반 쓰레기로 위장한 것이다. 다시 옷가지와 이불로 시신을 감싼 뒤 100L짜리 종량제봉투에 넣었다. 그러고는 평소 자신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구역 내 한 초등학교 앞 쓰레기장에 갖다놓았다. 이어 6일 오전 6시 10분경 평소처럼 출근한 이 씨는 Y 씨 시신이 담긴 봉투를 쓰레기차량으로 수거한 뒤 완산구 상림동 소각장에 유기했다.


두 사람은 모두 이혼한 뒤 혼자 살았다. 가족과 왕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더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경찰은 이 씨가 이런 점을 범행 때 고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 씨가 사망해도 찾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살인극에 이은 이 씨의 사기극은 치밀했다. 이 씨는 범행 얼마 뒤 경기지역의 한 병원의 도장이 찍힌 진단서를 위조했다. 병명은 허리디스크, 환자는 동료 양 씨로 된 진단서였다. 이 씨는 진단서와 양 씨 이름의 휴직계를 팩스로 구청에 보냈다. 구청은 별다른 의심 없이 5월부터 양 씨의 휴직을 허가했다.

‘직장 문제’를 해결한 이 씨는 양 씨 가족 속이기에 나섰다. 양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따로 살고 있는 양 씨 자녀에게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다’ 등의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60만 원씩 세 차례에 걸쳐 생활비를 보내고 대학 등록금까지 때맞춰 송금했다. 실제로 Y 씨 자녀들은 한동안 아버지가 숨진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후 이 씨는 평소처럼 출근해 쓰레기를 수거했다. Y 씨의 휴대전화가 울리면 직접 받아 주인 행세까지 했다.

지난해 12월 Y 씨의 딸은 오랜 기간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지 못하자 이상하게 생각하고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일반 실종사건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전주의 한 노래방에서 Y 씨의 신용카드 사용 기록이 파악되면서 강력사건으로 전환했다. 사용자가 Y 씨가 아닌 이 씨로 확인된 것이다. 또 지난해 Y 씨의 신용카드로 수천만 원이 결제됐는데 대부분 유흥비였다.

경찰은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7일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씨는 경찰서로 가는 대신 인천으로 달아났다가 17일 한 PC방에서 검거됐다. 처음 혐의를 부인하던 이 씨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으러 가던 중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실토했다. 그는 범행 후 Y 씨의 카드 8개로 5100만 원가량을 결제했고 650만 원을 대출받았다. 범행 전에도 Y 씨에게서 8750만 원을 빌린 상태였다. 경찰은 이 씨가 1억4000만 원이 넘는 돈 대부분을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홧김에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하지만 생전에 Y 씨로부터 거액을 빌린 만큼 계획적인 범행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하지만 시신이 소각장에서 이미 처리돼 훼손 여부를 규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환경미화원#살해#위장극#계획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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