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과 싸우는 아버지 위해… 풀코스 첫 도전, 완주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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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교수직 내놓고 귀국한 유윤정씨

18일 오전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 출발점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윤정 씨(오른쪽)와 아버지 유호구 씨가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윤정 씨는 백혈병에 걸린 아버지의 쾌유를 기원하며 이날 처음 도전한 풀코스를 완주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8일 오전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 출발점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윤정 씨(오른쪽)와 아버지 유호구 씨가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윤정 씨는 백혈병에 걸린 아버지의 쾌유를 기원하며 이날 처음 도전한 풀코스를 완주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유학시절 ‘할 수 있다’는 아빠의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이번에는 제가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릴 차례죠.”

18일 오전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윤정 씨(39·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옆에는 응원차 함께한 아버지 유호구 씨(71)가 있었다. 아버지 표정이 딸보다 긴장돼 보였다.

윤정 씨의 첫 풀코스 마라톤 도전은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2015년 5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다. 윤정 씨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기 위해 미국 대학의 교수 자리까지 내놓고 한국에 돌아온 효녀다. 그 따뜻한 마음 덕분에 윤정 씨는 이날 완주에 성공했다. 기록은 4시간32분27초. 그는 “30km 지점에서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윤정 씨는 2004년 박사과정을 밟는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매일 두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다녔다. 당시 하루에 4시간도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10년 만인 2014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영어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가장 큰 원동력이 아버지의 응원이었다. 윤정 씨의 아버지는 일주일에 2, 3차례 “너는 할 수 있다”는 격려를 담은 글과 영상을 보냈다. 윤정 씨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응원이 없었다면 10년이 지나서도 교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 임용 1년 만에 윤정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6개월 이상 생존 확률이 50% 이하라는 ‘시한부 진단’을 내렸다. 윤정 씨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하염없이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통곡했다.

얼마 뒤 윤정 씨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으면 아버지 곁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10년 만에 갖게 된 교수 자리를 내놓았다. 윤정 씨는 “남은 시간에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지내는 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 교수직을 내놓고 귀국했다”고 말했다.

그는 좌절해 있는 아버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우연한 계기로 2018 서울국제마라톤 개최 소식을 듣고 지난해 12월 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마라톤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기 위해 두 달 넘게 매일 연습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목표로 세운 4시간30분과 비슷한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날 호구 씨도 힘든 몸을 이끌고 광화문광장에 나섰다. 딸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그는 연신 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날 위해 달리는 딸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딸이 주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저도 끝까지 버텨내겠습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유윤정#유호구#풀코스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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