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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홍수영]1호 ‘미투’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25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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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현장칼럼/홍수영]1호 ‘미투’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25년 후

홍수영 논설위원 입력 2018-03-19 03:00수정 2018-03-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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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호 ‘미투(#MeToo·나도 말한다)’였던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은 1993년 8월 24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통로에 붙은 대자보로 처음 알려졌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6일 같은 장소에 ‘미투 운동을 지지합니다!’란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홍수영 논설위원 gaea@donga.com

《 진실은 현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만으로는 진실을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생생함과 객관성의 보고(寶庫)인 현장에 통찰력과 분석력이 곁들여질 때 진실은 한 걸음 성큼 더 다가올 것입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따뜻하고 사려 깊게 현장을 보고 곱씹어서 깊이 있고 명쾌한 현장칼럼을 전달하겠습니다. 》
 
1994년 10월 1일 우 조교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 등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오른쪽 뒷모습이 우 조교.
홍수영 논설위원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1993년 8월 24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통로에 전지 6장짜리 실명 대자보가 내걸렸다. ‘한 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밝힌다’라는 제목이었다.

서울대 화학과 우○○ 조교는 담당 교수인 신○○ 교수를 지목해 “교육을 빙자해 팔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듯이 쓰다듬었다” “양팔을 내밀어 뒤에서 포옹하는 자세를 취했다” 등 성희롱 사실을 조목조목 폭로했다. 또 이를 거부해 자신이 해임됐다고 주장했다. 25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이른바 ‘우 조교 사건’)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1호 ‘미투(#MeToo·나도 말한다)’로 불리는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하지만 2018년 현재 한국을 강타한 미투의 폭풍 속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어쩌면 성폭력에 관한 한 수면 아래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25년 전 현장에 있던 인물들을 만나보고, 재판 기록을 포함한 1858쪽에 이르는 사건 백서 등 관련 자료를 들여다봤다.

세상을 뒤집은 “3000만 원 배상”

1993년 10월 서울민사지법에는 우 조교 측의 손해배상청구 소장이 접수됐다. 공동변론에 나선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는 “미국에서 상원의원의 비서 성희롱이 이슈가 됐고, 일본에선 관련 판결도 있다.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 공동대책위에서도 ‘sexual harassment’를 어떻게 번역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일 만큼 성희롱은 낯선 개념이었다.

국내 첫 성희롱 재판이라 화제는 됐지만 승소를 내다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 조교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1994년 4월 18일 서울민사지법 526호 법정. 재판장인 박장우 부장판사는 “고소인 왔나요”라고 물었다. 우 조교를 일으켜 세운 뒤 박 판사는 20분 가까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언동을 해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한 것은 성적 자유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고용과 근로에 있어서 성차별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위법한 행위다.” 우 조교는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고, 법정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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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 뒤 담당 재판부는 항의성 전화에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어깨 좀 쓰다듬고 손등 좀 만진 것 가지고 무슨 3000만 원이냐”고 반발하던 시절이었다. 반면 신 교수에게는 남성들로부터 위로와 격려 전화가 쇄도했다.

요즘 일부 남성 사이에 ‘미투 대처법’으로 거론되는 ‘펜스룰’은 이때도 등장했다. “시선을 여자의 눈 또는 몸에 두고 말하다 성희롱했다고 피소당할 수 있으니 대화할 때는 허공에 시선을 두라” “신입사원을 교육할 때는 예상치 못한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있으니 연필 길이의 막대기를 지니고 다녀라” 등 황당한 대응책이 쏟아졌다. 펜스룰 식의 해법은 남녀 간 불필요한 오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지만 또 다른 여성 차별 행위다.

감격은 짧았다. “우 조교가 조교직 연장 근무에 대한 강한 의사를 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희롱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반격이 이어졌다. 일종의 ‘2차 가해’였다.

지난한 6년여간의 소송전

1995년 5월 23일 서울고법 405호 법정에서는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우 조교와 신 교수 측의 최후 변론이 이뤄졌다.

“우 조교가 ‘소설을 썼다’는 건데 만약 그토록 황당무계한 거짓말이라면 탄로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은 굉장히 단순하고 가까이에 있습니다.”(우 조교 측 박 변호사)

“우 조교가 (성희롱이) 싫어서 여름에 두꺼운 재킷을 입었느니, 스웨터를 입었느니 그럽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을 좀 비틀든지, 뭣 하러 두꺼운 갑옷을 입습니까. 갑옷을 입으면서까지 그거를 감내할 그런 원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신 교수 측 최모 변호사)

당시 사건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최영애 여성인권을지원하는사람들 이사장은 “성폭력은 군대 내 폭력과 본질이 비슷하다. 누구도 막아주지 못하고, 문제 삼는 순간 ‘관심 병사’가 된다”며 “군대 폭력을 놓고는 ‘왜 피하지 않았느냐’ 하지 않잖느냐”고 지적했다.

“옆 얼굴만 나오게 해 주세요.” 1994년 4월 1심 선고 직후 법원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우 조교. 우 조교는 당시 언론에 성명은 성 만, 사진도 옆 얼굴만 나오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우 조교는 1심 판결의 환호가 끝나기도 전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가해자의 노골적인 성적 의도가 있어야만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3년여 뒤 1996년 2월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했고, 그해 6월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던 우 조교의 꿈은 6년여의 지난한 소송전 끝에 유예됐다. 당시 공동대책위에서 사건 실무를 맡았던 이수연 씨(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 여성인권팀장)는 “우 조교가 당시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현재 아이를 둔 엄마로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우 조교는 당시 취직을 위해 몇 군데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당신이 그 우 조교냐”는 확인을 거쳐 불합격됐다고 한다. 이 팀장은 “요즘 성폭력 피해자들도 나쁜 꼬리표가 붙어 고용상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 교수는 2008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직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실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미투’ 하는 것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 조교는 “저도 그냥 관두면 그만이었는데 누군가 또 당할지 모를 일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우 조교를 공동변론했던 박 시장은 “우 조교는 주장이 강하고 까칠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후 25년, 무엇이 달라졌나

그로부터 25년. 16일 찾은 서울대 중앙도서관 통로에는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우리 안의 고은, 이윤택, 안태근을 몰아내자’ 등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특히 들불처럼 번진 미투는 이제 대자보를 넘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공간을 확장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거치며 성장한 한국 여성의 성평등 의식은 지금 미투 운동을 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번에 우리 사회의 과제는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2차 가해를 막는 일이다. 미투는 성차별뿐 아니라 우리 안의 권위주의, 위계질서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미투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10∼20년 뒤 한국 사회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다.
 

“판결 후 남성들로부터 격한 항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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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List/Society/3/03/20180319/89160463/1#csidx579220cce16f04bae908e022b7d3e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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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후 남성들로부터 격한 항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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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후 남성들로부터 격한 항의 받아”

“판결 후 남성들로부터 격한 항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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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의 1심 선고는 그간 친밀감의 표시라며 묵인해 온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피해자의 관점에서 철퇴를 내린 첫 판결이었다. 1심 재판장이었던 박장우 변호사(69)를 16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미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주목을 받은 재판이라 판결까지 고심이 많았을 텐데….

“위법 여부를 따져 책임을 지우는 민사 사건으로만 생각했지 파장이 그렇게 클지 몰랐다. 첫 공판 때 우 조교 측 변호사 3명과 피고인 신모 교수, 서울대, 정부 측 변호사가 총출동했다. 혼잣말로 ‘중요한 사건도 아닌 것 같은데 전부들 오셨다’고 했다가 여성단체의 항의도 받았다.”

―신 교수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취지는….

“신 교수 행위가 요즘 ‘미투’에 비하면 가볍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 조교에게 압박감과 불쾌감을 줬느냐에 중점을 두고 봤다. 또 위자료를 산정할 때 서울대 교수라는 게 피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신성한 대학에서 그럴 수 있느냐는 거였다.”

―1심 판결 뒤 남성들 사이에는 저항도 있었는데….

“선고 다음 날 재판을 끝내고 나오는데 직원이 ‘부장님, 전화 왔다’고 해 법복도 못 벗고 전화부터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나는 ○○대 교수 ○○○인데, 네가 판사야?’ 하더라. 교수라는 분이 그렇게 거칠게 나오더라. 남성들의 반응이 상당히 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신 교수의 성희롱에 대해 “다소 짓궂지만 호의적인 언동에 불과하다” “성적 접근의 의도가 있었다 해도 경미하다”며 우 조교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혔을 때 어땠나.

“1심 재판부가 망신당한 거였다. ‘우 조교 편만 들었다’고 남자들에게 비난 들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성희롱이 이뤄졌다. 우 조교도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부인이 될 사람인데 용납해선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성폭력 문제에선 현실 변화보다 법원이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법대 신입생 시절 교수님께서 한 일본 판사의 퇴임사를 들려주셨다. ‘일평생 약자를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강자를 위해 판결했더라’는 얘기였다. 강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약자를 좀 더 배려해야 한다.”


홍수영 논설위원 gaea@donga.com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미투 운동#직장 내 성희롱#펜스룰#최영애 여성인권을지원하는사람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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