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 10년 이끌 샛별 김도연, 여자 마라톤 한국 신기록…2시간25분41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8일 2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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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비등록 선수들이 참가하는 서울시 남부교육청 산하 육상 대회에 나간 것이 한국 마라톤 새 역사를 쓴 그의 시작이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김도연(25·K-water)은 이 대회 400m에서 1위에 올랐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체육 교사이자 고모인 김경선 씨(65)의 권유로 이듬해 서울체중으로 전학했다. 중장거리 육상 선수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김도연은 육상 선수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혹독한 성장통을 앓았다. 중학교 여자 중장거리 선수들이 뛰는 거리는 1500m와 3000m. 400m 이하 단거리 육상도 해보지 않은 ‘왕초보’로선 기초 체력을 키우고 자신만의 주법을 만들어야 했다. 보통 엘리트 선수들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운동을 시작한 것에 비해 3~4년 늦게 시작했으니 갈 길이 멀었다. 중학교 2학년의 김도연은 기초부터 충실히 다졌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팔벌려뛰기 등의 PT체조와 ‘팔치기(달릴 때 팔 동작)’라 부르는 달리기 자세 교정 훈련에 매진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땀이 흥건할 정도로 몸을 단련시켜야 하는 지루하고 고된 훈련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매번 울면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김도연은 ‘조용한 악바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 잘 나서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모진 훈련을 군말 없이 이겨낼 만큼 다부졌고, 재능에 우쭐하지 않고 이를 실력으로 끌어올릴 만큼 생각이 깊었다.


장동영 감독과 함께 김도연의 중고교 시절을 지도한 서울체중·고교 김천성 코치는 “재능도 돋보였지만 성실함과 끈기가 빛나는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김도연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운동과 수업을 병행해야 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과에 적응해야 했다. 장 감독은 “오전 5시부터 시작되는 새벽 훈련에 김도연은 한 번도 늦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며 “어린 나이에 갑자기 고된 훈련에 지쳤을 법도 한데 도연이에게는 묵묵하게 이를 견뎌낼 강인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도연은 소리없이 강하면서도 정이 많기도 하다. 장 감독은 “실업팀 간 이후에도 모교를 방문해 불우한 후배 선수한테 선물도 주고 상금을 타면 후배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준다. 천성이 정말 착하다”고 말했다.

발목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좋아 탄력이 좋은 것이 김도연의 장점이었다. 살이 안 찌는 체질도 중장거리에선 유리했다. 기초가 탄탄해지자 곧바로 성과로 드러났다. 김도연은 선수 생활 2년째인 2008년 전국소년체전 3000m에서 9분40초82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땄다. 고교 시절 김도연은 국내 최정상급 중장거리 선수로 올라섰다. 고교 1학년 때는 제1회 한국청소년육상경기대회에서 9분39초29로 이 종목 한국 고교 선수 역대 3번째인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에 열린 제92회 전국체육대회 5000m에서도 이 종목 역대 세 번째 기록(16분10초43)을 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계속 기록을 깨나갈 거에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이 올라갈 겁니다.”

18일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에서 여자마라톤 한국최고기록(2시간25분41초)을 세운 그의 표정은 덤덤해 보였다. 마라톤 대회 출전은 이번이 세 번째. 40km 이상의 고강도 훈련도 단 한 번 했을 뿐.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 2km를 남겨두고 속력을 올렸는데 5km 남겨뒀을 때부터 그럴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웃었다.

마라톤 선수로 치면 초보에 불과한 그가 이렇게 단기간에 새 역사를 쓴 건 기적에 가깝다. 급성장의 원동력을 간결한 주법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날 김도연의 경기 직전까지 한국 최고 기록 보유자였던 권은주 아식스코리아 마케팅 팀장(41)은 “도연이를 서울체고 졸업한 뒤 강원도청 시절 처음 봤는데 그 때 정말 놀랐다. 팔 동작과 달리는 폼이 너무 좋았다”며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으로 달려 조만간 일을 낼 것으로 봤는데 드디어 내 기록을 깼다”고 말했다.

김도연은 한국 여자마라톤의 10년을 이끌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미 실업팀에서 여러 번 새 기록을 썼다. 지난해 7월에는 5000m에서, 올해 2월에는 하프마라톤에서 각각 15분34초17과 1시간11분0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웠다. 이제 남은 건 1만km 한국기록. 그는 “그것도 올해 안에 갈아치울 거에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김도연의 다음 목표는 8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는 “더운 날씨에 잘 적응만 하면 25분대 아니 그 이하도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영근 K-water 감독은 “김도연과 함께 목표를 정해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있다. 도연이는 순위가 아니라 기록과 싸우고 있다. 아시아경기에서는 2시간24분대로 골인하는 게 목표다. 그러면 성적도 좋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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