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의 ‘김영철 도발’… 언제까지 끌려만 다닐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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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25일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 보내겠다는 북한의 통보는 예상대로 우리 사회 내부에서 극심한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어제 정부의 김영철 방한 허용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청와대 앞에 몰려가 “천안함 폭침의 주범 김영철은 군사법정에 세워야 할 작자”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영철 거부 청원이 빗발쳤다. 미국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국무부 대변인은 “그가 (천안함)기념관에 가서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보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철 방문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뻔히 예견된 일이다. 40명이 넘는 우리 군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 대남도발의 책임자를 대표단장으로 보낸 김정은의 노림수에 그대로 말려든 꼴이다. 김영철이 누구인가. 정찰총국장 시절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2015년 목함지뢰 도발 등 각종 대남 도발을 지휘한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 도발로 희생된 장병과 유족들을 생각했다면 “김영철은 안 된다”고 교체를 요구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의 김영철 파견 통보를 덥석 수용했다. 통일부는 어제 설명자료를 내고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고 김영철이 당시 정찰총국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에 급급했다.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향해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누가 방문하든 남북 해빙 기류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하겠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한미 간 균열까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이 김영철을 향해 ‘천안함에나 가보라’고 싸늘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노골적인 불만 표시다. 미국의 대북제재 대상인 김영철에 대한 한시적 제재 예외조치를 인정해 달라는 한국의 요청을 대놓고 거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처사를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강도 높게 구축돼 있는 대북 압박 기조에 김을 빼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느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명간 초강도 추가 대북제재를 직접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한해 천안함기념관을 다녀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 일가를 “악의 가족 패거리”라고 비판했다. 한국이 ‘손님’으로 맞아들인 김여정을 두고도 “폭압정권의 중심축”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갈등과 균열 속에서도 정부는 김영철 방한 수용 방침을 번복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정부는 김영철이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는 만큼 협상의 카운터파트라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북-미 대화의 진전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에게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데 대한 김정은의 답변을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다. 반발 여론을 의식해 문 대통령과 김영철의 면담 장소를 청와대가 아닌 외부로 검토하는 등 ‘환대’로 비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그 어떤 메시지를 던지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을 다루는 우리 정부의 자세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계속 끌려다니는 태도를 보인다면 북한은 더 기고만장해질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설령 북한을 북-미 대화의 장으로 불러낸다 해도 비핵화 샅바싸움에서부터 북한의 기고만장한 자세에 발이 걸릴 것이다. 대화는 필요하지만 최소한 북한에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단은 고사하고 우리 사회와 한미 간 균열만 가속화할 뿐이다. 평창 이후가 걱정이다.
#김영철#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천안함 폭침#김영철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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