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박제균 칼럼]北-美 외교전쟁 열린다
더보기

[박제균 칼럼]北-美 외교전쟁 열린다

박제균 논설실장 입력 2018-02-19 03:00수정 2018-02-19 09:34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남북관계 운전석 앉았던 南, 1992년부터 태도 바꾼 北… 남북관계를 ‘北-美 서자’ 취급
북-미 대화 어디로 튈지 몰라… 전쟁 위기부터 ‘평화체제’까지
평화는 과정, 목표 ‘한반도 制覇’… 金씨 3代, 한시도 잊은 적 없어
박제균 논설실장
우리도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았던 때가 있었다. 북한은 1974년 김일성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이래 집요하게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는커녕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지 못했다. 미국은 남북관계에 관한 한 남측에 전권을 부여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한반도 문제의 핵심 쟁점을 망라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분야별 이행합의서는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됐다. 당시 통일원 출입기자였던 나는 1992년에 무수히 많은 날을 판문점 취재 현장에서 보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방안을 협의할 각종 공동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면 통일이 꼭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는 사명감도 충만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북한이 남북 화해의 몸짓 뒤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 줄을. 남북대화를 철저히 북-미 대화의 마중물로 쓰려던 계략을.

한국에 남북관계의 전권을 줬던 미국에는 1991년을 기점으로 미묘한 기류 변화가 생겼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사실상 ‘일방적인 비핵화’를 선언할 정도로 핵문제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으로선 직접 북한과 만날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북-미 직접협상에 거부감을 느꼈던 노태우 정부는 미국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접촉은 단 한 차례여야만 하고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반응을 듣되, 협상을 벌여서는 안 되며 △북한에 전달할 메시지는 사전에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은 이 조건들을 모두 수용했다. 그래서 성사된 것이 1992년 1월 뉴욕에서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이 만난 1차 북-미 고위급 접촉이었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마냥 끌려다니는 오늘날과는 180도 다른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단 미국과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북한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서자(庶子) 취급하기 시작했다. 북-미관계가 잘나갈 때면 남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북-미관계가 교착되거나 파국에 이르면 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럴 때도 북이 남에 원하는 것은 거의 항상 변함이 없었다. 험악해진 북-미관계의 증기를 빼거나, 미국이 해줄 수 없는 경제적 이득을 바라거나, 아니면 한미관계를 이간질시키는 것이었다.

지금도 바로 그런 때다. 김정은이 올해 들어 깜짝 놀랄 정도의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은 위에 말한 세 가지 중 한두 개를, 아니 세 가지를 다 원하는 것일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까지는 당장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일 듯, 치킨게임을 벌인 뒤여서 더욱 그렇다.

미국과 북한이 치킨게임을 벌이면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거들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는 내부 비난과 함께 국민이 불안해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동맹을 놔두고 북한 편을 들 수도 없다. 그래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 당장 미국 내에서 한국의 동맹 역할이 실종됐다는 비판론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북한에 유화적 자세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런 고민은 이 정부뿐 아니라 역대 한국 정부가 모두 짊어진 부담이었다.

주요기사

바야흐로 북-미대화의 서막(序幕)이 열릴 조짐이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을 수 없는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남북관계 상대방인 북쪽부터 남측에 운전대를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미국도 남북관계의 전권을 줄 뜻이 없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설혹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는 북-미 협상의 보조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으로선 북-미대화가 열려도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불꽃만 피식거리다 다시 군사 옵션과 전쟁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협상이 잘된다면 북한 핵·미사일 동결 등 핵문제의 진전과 함께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합의할 수도 있다. 협상이 훨씬 멀리 간다면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수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까지 의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북한 정권에 평화체제 구축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이다. 북의 일관된 최종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무력이든, 선거를 통해서든 한반도를 제패(制覇)하는 데 있다. 김일성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는 한시도 이 목표를 잊은 적이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남북관계#북-미 평화협정#노태우 정부#남북기본합의서#김정은#북미 대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