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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당기려 유니폼 박음질… 그 열정이 ‘황제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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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당기려 유니폼 박음질… 그 열정이 ‘황제의 자격’

김재형기자 입력 2018-02-15 03:00수정 2018-05-1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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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설날 대관식 앞둔 스켈레톤 윤성빈… 조인호 감독이 말하는 ‘남달랐던 과거’
‘한국 스켈레톤의 희망’ 윤성빈(24·강원도청·왼쪽)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외국 대표팀 코치 제프 페인에게서 유니폼 수선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 조인호 스켈레톤 감독 제공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24·강원도청)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 때 새 역사 창조에 나선다.

15일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시작되는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한국 썰매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수년간 ‘황제’ 자리를 지키던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를 밀어내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윤성빈은 네 번의 레이스에서 금빛 질주를 펼치겠다는 각오다.

윤성빈은 100만 명에 1명 있을까 말까 한 ‘천재’로 불릴 정도로 그 성장세가 가팔랐다. 주행 능력이나 신체 구조가 남달라 단기간에 최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만 해도 그저 운동신경 좋은 초짜에 불과하던 그가 어떻게 4년 만에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을까. 2012년부터 윤성빈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조인호 감독(40·현 대표팀 및 강원도청 감독)이 꼽은 윤성빈의 남달랐던 장면을 소개한다.

○ 2014년 소치 올림픽: ‘0.01초’를 줄이는 디테일

‘한국 스켈레톤의 희망’ 윤성빈(24·강원도청·왼쪽)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외국 대표팀 코치 제프 페인에게서 유니폼 수선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 조인호 스켈레톤 감독 제공
두꺼운 허벅지는 윤성빈의 엄청난 장점이었지만 문제는 유니폼이었다. 맞춤형 유니폼이 아니어서 허리가 남아돌았다. 그래서 주행을 하면 헐렁한 유니폼이 펄럭이면서 시간을 깎아 먹었다. 100분의 1초 싸움을 하는 스켈레톤 종목엔 치명적이었다. 이 ‘디테일’을 메울 노하우가 당시 한국 스켈레톤엔 없었다. 올림픽 주행 이틀 전. 당시 조 감독의 끈질긴 구애 끝에 주행의 대가로 불리던 제프 페인(48·캐나다)이 숙소를 찾았다. 은퇴한 뒤 다른 대표팀을 지도하던 그는 재봉틀에 윤성빈의 옷을 올려놓고 수선법을 가르쳤다. 앳된 얼굴의 스무 살 청년 윤성빈은 페인의 손동작도 놓치지 않았다.

이날 윤성빈이 페인에게 배운 건 수선법만이 아니었다. 당시 세계 5개 경기장의 트랙 레코드를 세울 정도로 주행 실력에 정평이 나 있던 페인이었다. 윤성빈은 그런 페인에게 알짜배기 주행법을 소개받았다. 페인은 태블릿PC로 자료화면을 띄워 설명했고 윤성빈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날씨에 따라 또 트랙에 따라 어떤 러너(썰매 날)를 골라야 하는지도 전수받았다. 윤성빈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조 감독은 “0.01초를 줄이는 노하우가 필요했고 당시 우리 팀엔 없었다. 재능 있는 후배의 빈 곳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에 페인에게 간청해 윤성빈에게 부족했던 작지만 큰 결점을 메워 나갔다”고 말했다.

○ 2013년 1, 2월 캐나다 휘슬러: 극한의 살찌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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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까요. 전 꼭 나가고 싶습니다.”(윤성빈)

“그럼 몸무게 10kg부터 찌우고 시작하자!”(조 감독)

윤성빈이 2012년 말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IBSF) 월드컵 경기를 처음 본 직후였다. 월드컵 출전권이 없어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트랙을 분석하던 윤성빈의 당시 몸무게는 70kg 초반대였다. 소치 올림픽이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윤성빈의 주행 속도를 높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스켈레톤 선진국이야 선수 몸무게가 적어도 고급 장비를 쓰거나 축적된 주행 노하우를 전해주면 그만이었다. 당시 한국의 여건은 그렇지 못했다. 윤성빈의 몸무게를 80kg 후반대로 만드는 것이 당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성장법이라 판단했다.

그날부터 아침잠이 많은 윤성빈은 잠을 줄여가며 하루 8끼를 챙겨 먹었다. 그렇게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2개월이 지나자 어느새 윤성빈의 몸무게는 85kg에 달했다. 그해 2월 윤성빈은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작은 기적’을 썼다.

○ 2012년 10월 미국 파크시티: 생애 첫 썰매 주행

2012년 10월 미국 파크시티 경기장. 윤성빈은 이곳에서 생애 첫 주행을 했다. 조 감독에게 물려받은 윤성빈의 유니폼은 다 해져 있었다. 그 유니폼의 오른팔 부위에는 테이프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찢어진 유니폼에 임시방편으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그곳에 하도 테이프를 덧대다 보니 두툼한 보호대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주일에 100달러(약 11만 원)를 주고 빌린 낡은 썰매를 썼다. 지금 윤성빈의 트레이드마크인 아이언맨 헬멧도 없었다. 대신 스키헬멧에 턱 끈을 붙여 썼다. 그렇게 윤성빈은 첫 주행을 시작했다. 중간에 트랙 벽에 부딪혀 완주하지도 못했다. 트랙을 빠져나온 윤성빈은 조 감독에게 말했다. “제가 할 만한 종목은 아닌 것 같아요….” 무던하기로 소문난 윤성빈이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이 종목을 이해하면 재미있을 거야 조금만 참자.” 어쩌면 윤성빈의 선수 생활에 가장 큰 고비는 첫 주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윤성빈은 이를 극복하고 끝내 평창에 섰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평창올림픽#스켈레톤#윤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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