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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의 뫔길]자진해 물러난 전임 교황은 뭘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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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의 뫔길]자진해 물러난 전임 교황은 뭘 하시나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입력 2018-02-14 03:00수정 2018-02-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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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베네딕토 16세의 기도 장면을 패러디한 사진. 2014년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월드컵 결승은 바티칸 더비로 불렸다. 동아일보DB
2014년 8월 프란치스교 교황(82)의 한국 방문을 취재할 무렵 화제가 됐던 사진이 있다. ‘신(神)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까’라는 제목이 붙은 패러디였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말풍선을 띄우고, 각각 출신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독일 국기를 그려 넣어 승리를 염원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달 전쯤 열린 두 나라의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은 ‘바티칸 더비’ ‘교황 대결’로 불리기도 했다.

다시 살펴보니, 원래 사진은 2013년 3월경 교황의 여름 별장이 있는 이탈리아 남부 카스텔간돌포에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선종(善終·죽음을 의미하는 가톨릭 용어) 때까지 직분을 수행하는 교황의 자진 사임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무려 598년 만이었다. 살아 있는 전·현직 교황의 만남은 이미 가톨릭사의 중요한 사건이 됐다. 이후 그 의미가 어느 정도로 커질지는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를 방문해 함께 기도했다. 교황이 “메리 크리스마스, 교황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하자, 베네딕토 16세는 “언제나 기도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런 운명적인 교차점 이후 교황은 세상의 한가운데로, 베네딕토 16세는 기도와 명상, 은둔의 세계로 향했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가톨릭 교계가 발굴한 최대의 ‘슈퍼스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뉴스 메이커다. 무엇보다 추문으로 얼룩진 바티칸에 대한 개혁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낮은 행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쳇말로 ‘맞짱’ 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구인 아닐까? 13억 가톨릭 신자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이고 트위터 팔로어만 4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종교를 뛰어넘은 파파 신드롬이 그 힘의 원천이다.

실제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협약에서 탈퇴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자연환경이 공동의 이익, 모든 인류의 유산,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가 바티칸을 방문하는 각국 대표들과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관례를 깨고 모국어 스페인어를 쓴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적 선택이라는 해석이다. 교황은 트럼프의 장벽 건설 공약에 대해서도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건 간에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반면 퇴임 이후 드러나지 않았던 베네딕토 16세의 길은 최근 보도된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7일(현지 시간) 발행된 이탈리아의 한 매체에 따르면 올해 91세인 그는 “육체적 힘이 서서히 쇠퇴함에 따라 주님의 집을 향한 내적인 순례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퇴위한 교황의 건강과 일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는 요청에 응해 편지 형식으로 근황을 전한 것이다. 그는 “때로는 조금 힘들기도 한 이 마지막 시기에, 결코 상상하지 못한 이렇게 큰 사랑과 선의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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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난해 10월 선종과 관련한 가짜 뉴스가 없었다면 잊혀졌던 교황의 삶은 훨씬 나중에 알려질 수도 있었다. 당시 그의 위독설이 퍼져 나가자 교황청 대변인이 두 수녀의 예방을 받고 숙소 앞에서 찍은 베네딕토 16세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나서야 선종설은 잠잠해졌다. 베네딕토 16세는 현재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과 정원 사이에 있는 교회의 한 수도원에 거주하고 있다.

일부 혹독한 교회 비평가들은 바티칸을 물이 새는 ‘노아의 방주’로 불러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지만 그가 진 십자가의 무게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5년 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언제나 기도하겠다”는 짧은 대화는 그래서 다르게 읽힌다. 그 기도는 세상에서 오직 두 ‘고수(高手)’만 알 수 있는 절대고독과 연민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50년, 100년 뒤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이전에 압도적 사건을 만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20여 년 동안 인연을 맺은 문한림 주교의 말이다. “내가 아는 그분은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절대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프란치스교 교황#베네딕토 16세#바티칸 더비#교황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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