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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 신청, 말기환자 300명중 18명… 실제 적용 1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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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 신청, 말기환자 300명중 18명… 실제 적용 1명뿐

조건희 기자 , 구호영 인턴기자입력 2018-01-24 03:00수정 2018-0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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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준비 덜된 한국]연명의료법 2월 전면 시행… 서울대병원 3개월 시범사업 결과보니
22일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 입원 중인 이모 씨(65·여)의 표정은 평온했다. 지난해 12월 배탈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이 씨는 곧 “어차피 회복할 길이 없다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형제들은 그 선택을 존중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 씨의 여동생은 “끝까지 치료하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행복해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뜻을 따르길 잘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말기 위암 환자 A 씨(당시 43세)의 마지막은 달랐다. 젊은 시절 호스피스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한 A 씨는 2년 전 위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자 “항암제를 끊고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항암제를 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치료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항암제를 계속 맞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늑막에 물이 고여 호흡이 점점 더 곤란해졌다. 지난해 말 A 씨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 연명의료 중단 결정 가로막는 가족들

임종을 앞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다음 달 4일 전면 시행된다. 하지만 환자 대다수는 A 씨처럼 연명의료 중단 의향을 밝히고도 가족의 반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 등을 착용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3개월간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이 병원에서 스스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단 1명이었다고 23일 밝혔다.

같은 기간 이 병원에서 말기나 임종기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300여 명이었다. 이 중 연명의료 상담에 응한 환자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48명에 그쳤다. 상담 이후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는 18명뿐이었다. 허 교수는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의향을 묻는 것을 가족들이 가로막거나 차일피일 미뤄 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임종기 판정을 받은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고 의료진에 요구할 수 있다. 의료진은 가족 등 보호자가 반대해도 환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가족의 결정권이 더 컸다. 임종기 환자는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가 많아서다.

임종기에 접어들기 전 환자와 가족이 연명의료 의향을 터놓고 상의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이 2012년 말기 암 환자 20명의 가족을 조사한 결과 가족 구성원이 모여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함께 결정한 사례는 7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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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의료 중단, 나는 해도 가족은 안 돼”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연명의료를 화제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혀도 가족들은 그게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아일보가 22, 23일 성인 1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내가 임종기 판정을 받으면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응답은 89.4%였지만 “내 가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응답은 75.1%로 차이가 났다.

결국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작성해야 하는 연명의료계획서보다는 건강할 때 미리 써둘 수 있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공공의료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의향서 작성 교육과 접수를 병행해 가족끼리 자연스럽게 관련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해야 임종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연명의료를 받는 대다수 환자는 고통받는 시간만 늘어나다가 스스로 삶을 정리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며 “가족이라도 이런 연명의료를 환자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임종을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선 환자 본인이 계획서에 서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환자의 가족이 대신해 의향을 전할 때는 진술서와 확인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내야 한다. 가족 등 대리인의 서명만을 요구하는 미국이나 아예 환자와 가족의 서명을 받지 않는 영국보다 훨씬 엄격하고 복잡하다.

최혜진 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장(종양내과 교수)은 “법과 현장 분위기의 괴리가 너무 크다”며 “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연명의료는 환자의 최선을 위해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 결정한다’고 규정한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구호영 인턴기자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
#존엄사#연명의료#암#말기환자#적용#시법사업#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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