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맞은 이찬희 서울변호사회장 “로스쿨 개혁 이야기할 시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2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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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과 법조계 개혁의 핵심입니다.”

23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53·사법연수원 30기)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검찰은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개헌안을 다 중단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야 간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도 이번에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전체 변호사의 약 75%, 1만7700여 명의 변호사가 속해있는 서울변호사회의 94대 회장이다. 한국헌법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변호사회는 한국헌법학회와 함께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3월 전에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1년 간 이 회장은 변호사들의 권익과 복지 향상에 많은 공을 들였다. 변호인의 변론권을 확대를 위해 꾸준히 검찰·경찰과 소통하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 결과 변호인에게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통보하고, 경찰 단계에서 형사사건 관련 서류의 열람등사범위를 확대하며, 변호인 입회 시 수기 메모 허용 등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검찰과 법원을 가까이서 봐 온 만큼 이들 기관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근 청와대가 밝힌 권력기관 개편 방안에 대해 이 회장은 “검찰·경찰·국정원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지만 견제와 균형을 잘 고려한 안이라고 본다”며 “이러한 시스템을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법부 개혁과 관련해서는 “법원은 검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 움직임이 약하다”며 “내부 갈등으로 인한 진통을 빨리 극복하고 내부에서부터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외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넣는 것 보다 법원 내부에서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 권력에 줄대기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변화의 필요성과 함께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문 대통령은 로스쿨의 도입에 관여했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면서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일원화하신 분으로서 로스쿨 제도의 완성에 책임이 있다”며 “로스쿨제도의 취지에 맞게 포화상태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활동할 직역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외국민보호를 위해 외국 공관에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하고,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과 각 기업의 준법지원인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은 향후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대한변협이 과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며 “그동안 변호사업계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직접 현안에 대해서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찬희 서울변호사회장과의 일문일답 전문.

―올 한해 최대 화두 중 하나가 개헌이다. 개헌 논의 중 사법 분야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검찰은 변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각 권력기관에 권한을 어떻게 적절히 분배할지는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개헌안을 다 중단하는 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이라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은 다음에 다시 논의하더라도 이번에 매듭지을 부분은 확실히 짓고 가야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개헌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한국헌법학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현 시점에 가장 적합한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을 마련 중에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조계 개혁에 대한 총평한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전체에 개혁 바람이 불었다. 촛불혁명을 시작으로 잘못된 관행과 편법에 젖어있는 구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국가기관과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의 흐름이 이어졌다. 법조계에서도 개혁이 가장 큰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 법원에서는 기존의 불통과 권위적인 문화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개혁적인 대법원장이 취임했고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검찰에서도 지나친 검찰권력 비대화와 정치권과의 유착에 따른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파격적인 인사와 광범위한 적폐수사가 진행됐다. 경찰도 집회·시위에 대한 무리한 대응과 비인권적인 수사관행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인권경찰로 탈바꿈하려는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이번 개혁안에 대해선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모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당사자들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지만 견제와 균형을 잘 고려한 안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을 어떻게 잘 돌아가게 하느냐다. 검찰은 왜 수사권 조정이 문제가 됐는지, 경찰은 왜 완전한 권한을 받지 못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까지 이들 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가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말했다. 권력은 늘 인권침해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조인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전 집권자들과 다른 운용의 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변호사회도 외부에서 권력기관들을 견제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가 국정을 혼란시키고 피로감을 야기하므로 적당한 수준에서 덮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종기를 완전히 도려내지 않으면 다시 또 곪는다. 그동안 우리는 일부 기득권층의 저항이나 집권세력의 편리함 추구 때문에 일제의 잔재나 독재·군사정부의 적폐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 본다.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번 할 때 제대로 수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혼란의 위험성을 이유로 개혁을 방해하면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에 큰 틀에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일관성과 형평성에 입각해 철저하게 진행하고 그 후에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포용하는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법부 개혁 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핵심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판사들은 늘 재판이 공정하다고 애기하지만 국민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법원 스스로 어떤 외부 바람에 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부에서부터 바로잡아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검찰·경찰·국정원 모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법원은 아직 그런 움직임이 약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 작업에 기대가 큰데 아직 내부 문제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보이지 않는다. 내부 진통을 빨리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법관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보장돼야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의 독립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국민들은 외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보다 법원 내부의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 권력에 줄대기를 하는 것을 더 우려한다. 이런 점에서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추가조사위 발표에서 문제로 지적된 점을 법원 스스로가 시정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도록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정농단 재판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보이콧을 어떻게 보는가.

“재판에서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방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이콧한다는 건 대통령 출신으로서 사법제도의 틀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고 본다. 할 말이 있으면 재판에서 떳떳이 하고 국민을 설득해야지 재판 보이콧이라는 소극적 방법으로 국민의 이해바라는 건 그것 역시 구시대적인 사고로 보인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나.

“로스쿨이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이제는 로스쿨의 개혁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로스쿨 제도의 취지는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과 변호사들의 활동을 넓혀 사회 곳곳을 ‘법치주의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앞부분만 시행되고 있다. 로스쿨을 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로스쿨의 설계에 관여하지 않은 대통령들이 집권하면서 뒷부분이 유보되고 있는 상태다. 문 대통령은 로스쿨의 도입에 관여했고 사법시험을 폐지하면서 로스쿨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일원화하신 분이다. 로스쿨 제도의 완성에 책임이 있다.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맞게 포화상태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활동할 직역을 넓혀줘야 한다. 재외국민보호를 위해 외국 공관에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파견하고, 정부 각 부처의 법무담당관과 각 기업의 준법지원인에 변호사자격을 가진 사람을 임명해야한다.”

―변호사시험의 낮은 합격률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로스쿨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 출발점은 너무 낮은 변호사시험(변시) 합격률에 있다. 초기에 사실상 80%이상이 합격하던 시험이 이제는 합격률이 50%가 안 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변호사시험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린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과거 사법시험의 폐해로 제기되던 대학교육의 황폐화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전공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로스쿨의 본래 취지에 맞게 로스쿨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조정돼야 한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어떠한 수준으로 조정할 것인지, 연간 시장에 배출되는 적정한 변호사 숫자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이제 로스쿨과 관련 있는 정부 조직인 법무부와 교육부,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함께 모여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각자 따로 움직이고 있다. 건드리면 너무 민감한 문제니까 수수방관하면서 상대방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건 옳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으로 지낸 1년의 소회는.

“하루도 안 쉬고 주말에도 각종 행사나 회원들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아니면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 삶에서 가장 바쁜 1년을 보냈다. 회원들(변호사) 많이 만나면서 변호사가 참 힘든 일이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업무를 편하게 할 수 있을지, 변호사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게 할 지 더욱 고민하게 됐다. 지난 1년 간 겉으로 보이는 외형보다는 서울변호사회 내부의 문제점을 바로 잡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선거에서 지나치게 프레임 구조를 짜서 청년변호사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회계업무 등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과거 집행부에 비해 예산 절감을 상당히 이뤘다. 사무국 체제도 바꿨고 전자결제시스템도 도입했다. 회원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거의 매일 진행하고 있다. 지금도 서울 곳곳의 회원사무실 방문하면서 회원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현장 목소리를 자주 듣고 있다.”

―지난 1년 간 검찰·법원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얻은 성과는.

“변호사들이 자주 접촉하는 검찰·법원·경찰 그리고 교정당국과 긴밀한 소통체제를 확립하는 데 힘썼다. 성과도 적지 않다. 검찰과는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휴대전화로 변호인에게 통보하게끔 했고, 변호인 입회 시 수기 메모를 허용하는 등 피의자 방어권과 변호인 변론권 보장을 위해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개인회생·파산 사건을 노리는 법조 브로커를 근절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과는 업무협약도 맺었다.”

―유사직역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직역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히 밀어붙이기식 교섭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의 제시가 필요하다. 국민이 수긍한다면 국회의 표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지난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의 대응을 보면서 대한변협이 과연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회원의 약 75%를 차지하는 서울변호사회와 서울변호사회장이 일정부분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요청도 많이 받고 있다. 그동안 변호사업계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에 자제해 왔지만 앞으로 직접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겠다.”

권오혁기자 hyuk@donga.com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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