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대 원형’ 한반도 스키, 10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9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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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된 고대원형 한반도 스키 2대(사진 양쪽 끝) 모습. 이 스키는 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네 구멍식 고대원형 스키’로 고로쇠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조에쓰시(일본 니가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일본 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된 고대원형 한반도 스키 2대(사진 양쪽 끝) 모습. 이 스키는 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네 구멍식 고대원형 스키’로 고로쇠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조에쓰시(일본 니가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조에쓰(上越·니가타 현) 시의 일본스키발상기념관에서 네 구멍 식 한반도스키(함경남도에서 발견) 존재를 기자가 처음으로 확인한 때는 2009년. 처음 실물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지금 타고 다녀도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보존상태는 완벽했고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솜씨 좋은 장인이 가다듬은 듯 바닥과 등 표면은 수려했다. 나무판에 뚫린 구멍 네 곳을 발을 묶을 끈이 ‘일’(一)자로 통과하는 데 그 끈이 노출되지 않도록 홈을 파둔 것도 놀라웠다.
일본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중인 한반도 고대원형 스키 두 대중 이번에 환국하는 한 대. 5200년 전 스웨덴 것과 똑같이 네 구멍 식이라 스키고고학에서 극히 귀중한 유물로 간주된다. 서브원 제공사진.
일본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중인 한반도 고대원형 스키 두 대중 이번에 환국하는 한 대. 5200년 전 스웨덴 것과 똑같이 네 구멍 식이라 스키고고학에서 극히 귀중한 유물로 간주된다. 서브원 제공사진.

일본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돼 온 네 구멍식 고대원형 한반도 스키. 1912년 함경남도에서 발견된 것이라 씌어 있다.
일본스키발상기념관에 전시돼 온 네 구멍식 고대원형 한반도 스키. 1912년 함경남도에서 발견된 것이라 씌어 있다.

이 한반도스키가 ‘고대원형’으로 불리는 건 5200년 전 스키(스웨덴 발굴)와 똑같이 네 구멍을 뚫어 사용한 방식 덕분. 그래서 한반도 스키발상설과 연관지어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 한반도스키가 ‘고대원형’으로 불리는 건 5200년 전 스키(스웨덴 발굴)와 똑같이 네 구멍을 뚫어 사용한 방식 덕분. 그래서 한반도 스키발상설과 연관지어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 스키는 1896년 마티아스 쯔다르스키(1856~1940·오스트리아)가 최초로 개발한 알파인스키와도 흡사하다. 그가 설사면 활강에 용이하도록 고안한 릴리엔펠트(Lilienfeld·수도 빈 근방 산악)식 바인딩만 부착한다면 오스트리아스키라 해도 될 정도였다.

이를 발견한 아브라카와 데이사쿠 중위(육군 제8사단)는 제13사단(조에쓰 시 주둔)에 보냈다. 이곳은 일본 최초로 스키를 도입(1911년)한 일본 스키 발상지다. 그 주인공은 사단장인 나가오카 가이시(長岡外史·1858~1933) 중장이다. 그는 대륙침략에 필요한 스키부대 창설을 위해 유럽스키도입을 추진했고 이후엔 주민에게 보급해 대중화를 이끌었다.

일본스키발상기념관의 전시실에 붙어 있는 한반도 고대원형 스키 설명문.
일본스키발상기념관의 전시실에 붙어 있는 한반도 고대원형 스키 설명문.

1911년 일본에 스키와 기술을 전수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데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 소령. 일본스키발상기념관 소장 사진.
1911년 일본에 스키와 기술을 전수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데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 소령. 일본스키발상기념관 소장 사진.
이 과정엔 아픈 과거사도 영향을 미쳤다. 바로 1902년 1월 아오모리 현에서 일어난 ‘핫코다 대참사’다. 핫코다산(八甲山)에서 설중 행군 훈련을 하던 보병 5연대(제8사단소속·210명) 장병들이 조난을 당한 뒤 199명이 동사하고 생존한 11명도 극심한 동상으로 양손양발을 절단한 끔직한 사고였다. 훈련은 러일전쟁(1904년)을 획책하던 일본이 쓰가루 해협(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좁은 물길)까지 러시아함대가 진출, 철도를 파괴할 경우 눈 덮인 핫코다 산을 가로질러야 할 상황에 대비한 조치였다. 참사는 유럽에까지 알려졌고 노르웨이 국왕 호콘7세가 1909년 일왕에게 애도편지와 스키 두 대를 보낼 정도였다.

아브라카와 중위가 함경남도 농가에서 스키를 알아본 것도, 그걸 제13사단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참사와 연관이 있다. 우선 그가 속한 제8사단이 핫코다 참사의 당사자다. 또 그는 제13사단에서 스키강습을 받은 스키어였다. 나가오카 중장은 참사 당시 합동참모본부 부본부장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스키를 보내면서 장교 한 명을 일본에 파견했다. 알파인스키 창시자 쯔다르스키의 스키수제자이자 현재 니가타 현에서 매년 2월 열리는 ‘레르히 마쓰리’(눈 축제)의 주인공 데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 소령(1869~1945)이다. 그는 1910년 일본에 왔고, 이듬 해 1월 다카다(조에쓰 시)를 찾아 나가오카 사단장을 만났다. 1911년 1월 12일 제13사단의 연병장에선 일본 최초로 스키강습(장교 14명)이 열렸다. 일본스키 107년 역사의 첫날이자 조에쓰 시가 일본스키발상지가 된 날이다.

‘일본스키발달사’(1936년 발간)에 게재된 동서양 스키 사진. 왼쪽부터 한반도 고대원형, 오스트리아 식, 1926년경 사할린의 러시아 것, 레르히 소령이 가져온 스키다. 조에쓰시 제공사진.
‘일본스키발달사’(1936년 발간)에 게재된 동서양 스키 사진. 왼쪽부터 한반도 고대원형, 오스트리아 식, 1926년경 사할린의 러시아 것, 레르히 소령이 가져온 스키다. 조에쓰시 제공사진.

가나야(金谷)산엔 레르히 소령의 동상이 있다. 그 아래선 매년 ‘스키의 날’(1월 12일) 기념식이 열린다. 일본스키발상기념관도 그 언덕 아래에 있다. 당시 사진과 더불어 일본스키의 발전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도 전시되고 있다.

고대원형 한반도스키가 전시중인 조에쓰 시 다카다의 일본스키발상기념관. 일본에 스키를 전수해준 오스트리아의 레르히소령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풍으로 지었다.
고대원형 한반도스키가 전시중인 조에쓰 시 다카다의 일본스키발상기념관. 일본에 스키를 전수해준 오스트리아의 레르히소령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풍으로 지었다.


레르히 소령이 다카다에서 지낸 1년여 일본열도엔 다카다 발 스키열풍이 불었다. 나가오카 중장은 스키가 군 장비보다는 겨우내 눈에 갇혀 지내는 주민의 겨울스포츠로 더 적합함을 간파했다. 여자를 포함한 주민에게 가르쳤고, 다카다 스키클럽(현재 에쓰신스키클럽)이 그 때 창립(1912년)됐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던 나카무라 오카조(中村丘三)가 1921년 원산중학교(북한)에 교사로 부임했다. 스키지도자였던 그는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도 한 발군의 실력자였다. 그가 스키 두 대를 지니고 원산으로 왔고, 그를 통해 1920년대 한반도에서 원산을 중심으로 스키시대가 열렸다.

조에쓰시(일본니가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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