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명 ‘떼법’에… 마크롱 정부, 50년 신공항 프로젝트 접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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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노트르담데랑드에 건설 포기…기존 낭트 공항 확장하기로

《 프랑스 전역이 개발 사업을 막기 위한 시위꾼들의 방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7일 50년 전부터 추진해 오던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을 포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과반수 주민이 신공항 건설에 찬성한 주민투표의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10년 전부터 이 지역을 불법 점거해온 소수의 극렬 시위꾼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결국 신공항 건설을 포기하고 말았다. 정작 이들은 개발과는 무관한 반세계화를 외치는 시위꾼들이었다. 프랑스 전역에 이런 지역이 50곳이나 된다. 》
 

프랑스 서부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 부지 지역을 무단 점거하고 있는 한 시위자가 경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창처럼 생긴 장애물을 땅에 꽂고 있다. 피켓에는 공항 건설과 추방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프랑스 정부는 17일 결국 신공항 건설을 포기했다. 르피가로 사진 캡처
프랑스 서부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 부지 지역을 무단 점거하고 있는 한 시위자가 경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창처럼 생긴 장애물을 땅에 꽂고 있다. 피켓에는 공항 건설과 추방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프랑스 정부는 17일 결국 신공항 건설을 포기했다. 르피가로 사진 캡처
“우리는 무법천지가 된 이 지역의 갈등을 끝내야 합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17일 서부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 포기를 선언했다. 2009년부터 10년 동안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부지를 무단으로 점거해 온 극렬 시위대 50여 명이 반세기 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사업을 백지화시키는 순간이었다. 건설 찬성 여론이 더 많았는데도 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권들이 10년 넘게 소수 시위가에게 끌려 다니다 결국 포기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1960년대 초부터 낭트를 중심으로 한 대서부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1967년 낭트에서 20km가량 떨어진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1974년엔 이 지역을 구획정리 예정지구로 확정했다. 지지부진하던 프로젝트는 2000년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 의해 재가동됐다. 정부는 2008년 신공항 건설 추진을 확정한 뒤 2010년 공항 건설과 향후 55년 운영권을 공항운영회사 뱅시에 맡겼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까지 신공항이 완공됐어야 했지만 2009년부터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를 빙자한 전문 시위꾼들이 공항 부지 1650ha를 무단 점거하면서 무법천지가 됐다. 이들은 신공항 건설에 돈이 많이 들며, 습지 파괴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외지에서 온 시위대는 공항 건설과는 무관한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그룹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조사 보고서는 “점거 규모가 200∼300명이지만 이를 주도하는 건 50명”이라고 밝혔다.

필리프 총리가 17일 반세기에 걸친 신공항 건설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조아나 롤랑 낭트시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낭트시는 법원에서 수차례 “신공항 건설은 법적 하자가 없고 점거 주민들은 빨리 떠나라”는 판결을 내렸고, 2016년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55%가 신공항 건설에 찬성했는데도 신공항 건설이 무산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프랑스 정부의 더 큰 고민은 ‘떼법’에 휘둘리는 지역이 이곳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가 충돌 지역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곳이 전국적으로 50곳에 이른다. 이 중 12곳은 노트르담데랑드 신공항 건설처럼 반대 세력이 점거 중이거나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프랑스에선 신재생에너지 시설, 쓰레기 매립 시설, 교통 인프라 확충, 각종 상업시설 건설 등 새로운 개발을 할 때마다 주변의 사회 불만 세력들이 몰려와 방해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3단계로 반대 세력이 형성된다. 개발사업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반대 목소리를 낸다. 정부가 개발 프로젝트를 확정짓고 공사에 착수할 시점인 2단계로 넘어가면 강경한 대화를 주문하는 시위꾼들이 외부에서 합류한다. 마지막 3단계에선 생태전문가,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반세계화 활동가, 심지어 동물해방운동가까지 몰려와 현장을 마비시켜 버린다.

사회 불만 세력인 이들의 목적은 사회 전복이다. 필리프 총리는 17일 신공항 건설 포기를 발표하며 “점거 세력들은 봄이 끝나기 전에 모두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의 강제 퇴거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점거자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필리프 총리는 “신공항 건설 대신 낭트의 아틀랑티크 공항 활주로를 늘리고 다른 인근 지역 공항을 재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연간 수용 규모가 400만 명 수준인 아틀랑티크 공항이 2040년 900만 명 규모로 늘어날 이용객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포기한 이번 신공항 건설 프로젝트의 규모는 5억8000만 유로(약 7600억 원)다. 정부는 당장 손해를 입게 된 뱅시에 최대 3억5000만 유로를 보상해야 할 판이다.

프랑스 국민은 50년간 계속된 갈등에 지친 분위기다. 18일 여론조사에서 76%가 정부의 신공항 건설 포기 결정을 지지한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실용적인 결정’이라는 점을 꼽았다. 다만 응답자의 66%는 신공항 건설 찬성 의견이 높았던 주민투표 결과가 관철되지 못한 건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노트르담데랑드#프랑스#공항#마크롱#건설#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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