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와 애플의 국내 투자계획 속내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8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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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동아일보DB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동아일보DB
17일 경기 용인시 현대자동차그룹 환경기술연구소. 이곳을 찾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현대차 경영진이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깜짝 발표’가 나왔다. 현대차그룹이 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사업에 5년간 23조 원을 투자해 일자리 4만5000개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10여 시간 뒤. 애플도 ‘깜짝 발표’를 했다. 앞으로 5년간 미국 경제를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3500억 달러(약 380조원)를 쓰겠다는 것. 해외에 쌓아두고 있는 현금성 자산 수천 억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내외 재계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해당 정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성격의 입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채찍질만 당한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투자 계획은 ‘관치’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을 상대로 한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반(反) 기업적 정책 압박에 현대차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가 김 부총리와 가진 간담회에서 나온 것도 정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내심 노사 분규가 잦고 생산성이 낮은 국내 공장보다는 해외 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싶지만 정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국내보다 해외 생산 비중이 확연히 높아지면 노사 분규도 줄어들 것”이라며 해외 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 채찍과 함께 당근도 받은 애플


그동안 애플도 해외에 천문학적인 현금성 자산을 쌓아두면서 미국 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엔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미국 안에서 받아 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이 해외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는 모든 제품에 35%의 관세를 붙이겠다”고 애플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은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애플이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 정부가 ‘당근’을 꺼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법인세율이 35%에서 21%로 낮췄다. 해외송금 세율도 35%에서 15.5%로 내렸다. 해외에서 조세 회피에 따른 추징 압박을 받던 애플로서는 국내에 현금성 자산을 들여오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현재 애플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2520억 달러(약 269조 원)로 알려져 있다. 애플이 보유한 전체 현금성 자산의 94%로 미국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애플은 구체적으로 얼마를 송환할지 공개하지 않았으나 “11월 해외에서 현금 및 기타 유동 자산을 본국으로 들여올 때 내는 세금으로 380억달러(약 40조 원)를 책정했다”고 밝혔다.

애플은 또 이번 감세 조치로 이익을 늘어나는 만큼 직원들에게 2500달러(약 270만 원)씩 보너스를 지급키로 했다. 기업 감세→직원 소득 증가→소비 증가→경기 부양의 선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국내 재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내 경기 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두르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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