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朝三暮四 권력기관 개혁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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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권력 앞에 약한 조직… 경찰 권한 크게 확대했으면
내부적으로 분산해야 하나… 흉내만 낸 자치경찰제 도입
권력기관 견제에 필요한 기소·수사 분리도 不철저…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권력기관 개혁에 찬성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최근 밝힌 권력기관 개혁안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개혁의 골자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가진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다.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검찰로부터 경제·금융 등 일부 특수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의 수사권을 넘겨받는다.

대공수사권이 국정원에 있든 경찰에 있든 국민으로서는 대공수사를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견제고 균형이고 말하기 전에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 개혁일 텐데 잘해보라고 넘기는 대공수사권이 아니란 걸 모두가 안다. 지난해 국정원에서 검찰로 이첩한 대공수사는 한 건도 없다. 이 정부가 대공수사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솔직히 없다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

수사권에 대해서는 검찰에 있든 경찰에 있든 수사를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권한 남용을 막으려면 검찰이 기소권을 갖더라도 수사는 가능한 한 다른 데서 해야 한다. 그 다른 데가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혹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경제범죄수사국이든 상관없다. 그래야 상호견제가 가능하다.

대공수사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이고 경제·금융 관련 수사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다. 대공수사마저 경찰에 넘기는 판에 경제·금융 관련 수사를 검찰에 남긴 건 일관성이 없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끼어드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검찰에 여전히 영장청구권과 보충수사권이 남아 있어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가 검찰총장 동의 없이 낙점해 놓은 ‘믿는 구석들’이 없었다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이 보다 철저히 관철됐을 것이다.

검찰의 제도적 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하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같은 제2의 검찰을 만들 생각부터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공수처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개혁 원칙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공수처를 신설한다면 공수처가 수사권을 가질 때 검찰이 기소권을 갖든가,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때 경찰 등 다른 조직이 수사권을 갖는 식의 견제와 균형이 모색돼야 한다.

경찰은 대부분 사건의 1차적 수사권을 가짐으로써 훨씬 큰 권한을 얻는 건 틀림없다. 다만 현재의 경찰에서부터 자유당 시절까지의 경찰을 조망해 보면 경찰은 검찰보다 더 권력에 아유굴종(阿諛屈從)했다. 경찰 조직은 매우 커서 같은 직급의 경쟁자가 많고 승진 기준의 공정성이 떨어져 상관의 낙점에 목을 매는 조직이다. 게다가 경찰관은 사퇴하면 검사처럼 변호사를 할 수도 없어 권력 앞에서 강단을 갖고 처신하기 어렵다.

이런 경찰에 권한을 넘기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권한 분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국 경찰은 거의 모두 자치경찰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청와대도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자치경찰제를 도입해 분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그게 고작 치안 분야를 시도지사 관할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수사를 할 수 없는 경찰은 경찰이 아니라 그냥 방범대다. 헌법 제1조 3항을 신설해 지방분권을 명시한 개헌을 하겠다며 읍면동 조직까지 동원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자치경찰제다.

자치경찰제라 함은 자치경찰이 한 지역 내에서 일차적으로 사전적 방범 활동과 사후적 범죄수사 등 모든 종류의 경찰 업무를 수행하고 국가경찰은 테러나 조직범죄 등 전국적 단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 국한해 개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미국 뉴욕경찰은 모든 종류의 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연방수사국(FBI)은 연방법 위반 사건이나 기타 중대 사건에 대해 보충적으로 개입해 뉴욕경찰과 협력해 수사를 진행할 뿐이다. 독일 연방경찰과 란트(Land)경찰, 일본 국가경찰과 도도부현(都道府縣)경찰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안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보이는 건 권한을 주고받는 권력기관들의 눈에만 그렇다. 권력기관들 위에 있는 청와대나 권력기관들 밑에 있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장악은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만든 주요 원인이다. 개혁안에서도 권력기관을 내려놓지 못하고 손아귀에 쥐고 있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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