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최지훈]말미잘이 가르쳐준 결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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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친구 녀석이 아빠가 됐다. 며칠 만에 의젓해진 모습이다. 학생 때의 어수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어렴풋한 여유가 느껴졌다. 큰일을 겪은 자의 초연함이었을까. 이것이 아버지로 가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감동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은 아빠를 쏙 닮았다. 박수를 칠 만큼. 친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니 웃음이 난다. 한 아이의 탄생이 주변을 얼마나 밝게 하는지 새삼 느낀다. 멀리서 보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따뜻한데 당사자는 얼마나 뜨거울까. 아버지가 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부모가 된 친구가 많아졌다.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이 모두 아기 얼굴이라 아기들과 대화하는 기분이다. 동갑내기 애엄마가 생긴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게 엊그제 같지만, 이제는 부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고 놀란다.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의 모습이 선명해지는 게 재밌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들의 자녀에게서 찾으며 웃곤 한다. 오래전 그 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뵙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도 가족이 닮은 모습을 보며 재밌어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부모의 위치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본 적 없다. 종종 자식이 많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지낼 뿐이었다. 가정은 언젠가 저절로 갖춰져 있을 것이라고 맘대로 믿었다. 시간이나 사회가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가 막연히 깔려 있었다. 반대로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과는 다른 삶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결혼은 의무가 아니다’라고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혼자 지내는 삶에 대한 찬양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때도 있었다. 너무 수동적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능동적이어서, 나는 지금 노총각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우연히 어느 말미잘의 번식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미잘은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 물살에 날려 보내듯 놓아 주는 번식 방법을 가지고 있다. 모체로부터 떨어져나온 작은 덩어리는 자유롭게 떠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다다르면 뿌리를 내렸다. 어미와 자식의 개념적 경계가 모호한 번식. 사실상 자기 복제에 가까운 모습이다. 떨어져나가 독립한 새로운 말미잘은 또 하나의 자신이었다. 그런 식의 번식 방법이라면 그 말미잘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친구와 닮은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쩌면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복제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의 유전자도 내 자식과 또 그 자식의 자식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비슷한 점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도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전자로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니, 갑자기 내 삶이 완전히 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끊기지 않고 내려오는 긴 삶의 일부일까? 만약 그렇다면 스스로 결혼을 포기하는 일은 대단한 민폐다. 내 안에서 영생(永生)을 꿈꾸던 수많은 선조들의 기대를 멋대로 깨버리는 일일 테니. 이제 할 일 다 했다던 친구의 농담이 비로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생각이 많으면 노총각’이라는 말을 들었다. 말미잘의 번식과 나의 결혼을 이어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신년계획에 결혼을 넣었다. 다이어트, 금연 등을 넣어본 적은 많았지만 결혼은 처음이다. 심지어 출산을 목표로 한 결혼이다. 마음을 가볍게 먹어야겠다. 아버지가 된 기분이 궁금해서도 아니고, 조상에게 끼칠 민폐가 걱정돼서도 아니다. 그냥, 결혼하고 싶습니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결혼#신년계획#노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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