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39>천하장사는 왜 장사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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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장사 vs. 장수

아래 두 문장 중 올바르게 표현한 말을 찾아보자.

과일 장수가 왔다.(○) 과일 장사가 왔다.(×)

앞의 문장이 맞다. 여기서 좀 어이없는 질문을 해 보자. 그렇다면 ‘장사’는 틀린 말이고 ‘장수’가 올바른 말인 것일까? 우리가 맞춤법을 배우면서 갖는 가장 큰 문제가 이런 태도이다. 하나의 문제만을 보고 ‘장사’가 아니라 ‘장수’가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 그러고는 ‘장수가 맞다’고 외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가 그렇게 쉽고 간단하기만 할까?

과일 장수가 시작되었다.(×) 과일 장사가 시작되었다.(○)

이 두 문장 중에는 뒤 문장이 올바른 것이다. 결국 ‘장사’라는 단어도 있고 ‘장수’라는 단어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단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게 아니라 어떻게 다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차이의 문제를 정답, 오답의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 오히려 더 복잡해질 뿐이다. 게다가 실제로 완전한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만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장사’와 ‘장수’는 무엇이 다를까? 그 의미 차이를 알려면 문제 안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보자. ‘오다’라는 동사가 ‘시작되다’로 바뀌었다. 거기서 뭐가 달라진 걸까? 생각하기 어렵다면 그 단어 그대로 예문을 만들어 보면 된다.

김남미가 왔다.(○) 김남미가 시작된다.(×)

‘오다’ 앞에는 ‘사람’이 올 수 있지만 ‘시작되다’ 앞에는 사람이 올 수 없다. 그대로 ‘장사’와 ‘장수’에 적용해 정리해 보자. ‘과일 장수’는 과일을 파는 사람이다. ‘과일 장사’는 과일을 파는 행동이다. 그대로 넣어 보면 ‘과일 장수는 과일 장사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장사’가 ‘물건을 파는 일’이고, ‘장수’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를 보자.

장사하다(○):장수하다(×) 장사꾼(○):장수꾼(×)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면 좋겠다. ‘천하장사’는 사람인데도 왜 ‘장수’가 아니고 ‘장사’일까? 멋진 질문이다. 반례를 생각해 내야 맞춤법 실력이 좋아진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질문을 들여다보면서 더 많은 문제를 발견하고 그 덕에 더 잘 알게 된다.

앞서 본 ‘장사 vs. 장수’는 모두 상업에 관련된 단어였다. ‘천하장사’는 이와 관련되지 않은 전혀 다른 쓰임의 단어다. 또 한자어도 ‘장사(壯士)’로 다르다. 물론 ‘장수(長壽)’라는 한자어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천하장사의 ‘장사(壯士)’와 오래 산다는 의미의 ‘장수(長壽)’를 혼동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장사(상업):장수(상인)’는 혼동될까? 그것은 이 두 단어가 같은 상황 속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공통점을 가진 것들은 구분하기가 더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공통점을 가진 것들을 묶고 이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복잡한 것은 일부러 모아서 구분해 둬야만 혼동을 피할 수 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장수#장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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