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경력 첫줄이 ‘동아’… 내 삶의 항상 든든한 파트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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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아일보]<14> 발레리나 김주원

2006년 발레리나 김주원 씨가 출연했던 국립발레단 ‘해적’의 한 장면. 그해 김 씨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제전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자무용수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동아일보DB
2006년 발레리나 김주원 씨가 출연했던 국립발레단 ‘해적’의 한 장면. 그해 김 씨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제전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자무용수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동아일보DB
1995년 서울의 봄은 러시아보다 더 이르고 따뜻했다. 오랜만에 봄다운 봄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찾은 고국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볼쇼이발레학교 방학 중 ‘유학의 결실을 맺고 러시아로 돌아가리라’는 결심이 동아무용콩쿠르 참가로 나를 이끌었다.

막상 그렇게 맘을 먹으니 18세 발레리나의 가슴은 콩닥거렸다. 젊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부푼 꿈을 안고 동아무용콩쿠르의 영광을 상상해 봤으리라. 나 역시 어엿한 발레리나로서 가장 가슴이 뛰었던 첫 무대를 꼽으라고 하면 동아무용콩쿠르 무대를 주저 없이 꼽아왔다. 예선 통과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또래 무용수들과 실력을 겨루게 된다는 것이 그때로선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본선 무대에서 마침내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됐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3막 가운데 오로라 공주의 베리에이션.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하는 음악에 몸을 맡겼고 준비했던 무대를 선보였다. 가슴 졸이던 시간이 지나고 들려온 소식. 금상. 그것이 발레리나 김주원의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첫 계기였다. 내 이력 첫줄에는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이 새겨져 있다. 이따금 세종문화회관과 동아일보 사옥 근처를 지나갈 때면 풋풋했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원국 신무섭 장운규 황혜민 이원철 등 동료 선후배들도 역시 이 콩쿠르를 통해 비로소 얼굴을 알렸다.

그 뒤로도 동아일보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1997년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당시에는 콩쿠르 참가기를 적어 현장 분위기를 전달했다.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을 때도 동아일보가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지면을 할애했다.

감당하기조차 힘들 만큼 많은 축하를 받으며 기쁘기도 했지만 수상의 성과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더 큰 고민이었다. 바로 그때, 서울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아일보 기자였다. 인터뷰가 처음도 아닌데 유난히 긴장했다. 기도하듯 수화기를 떨리는 두 손으로 꼭 감싸야 했다. “수상까지 하리라곤 꿈도 못 꾸었어요. ‘월드 스타’ 발레리나들이 모두 거쳐 간 이 상에 후보로 뽑힌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그저 시상식 날 최종 후보가 펼치는 기념 공연에서 최선을 다해 ‘한국 발레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솔직한 심경이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예술가를 바라보는 동아일보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지금도 느껴진다. 수상 직후 귀국하자마자 대구 공연을 위해 KTX를 타야 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흔들리는 KTX에서의 인터뷰. 정치인도 아닌데 색다른 경험이었고, 이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떡 팔고, 생선 팔고 하는 시장이라 하더라도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두 무대입니다. 단 몇 명이 되더라도 제 춤을 본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말은 발레 대중화를 위해 애쓴 발레계의 진심 그 자체였다.

동아일보는 내 발레 인생의 파트너이자 오랜 친구다. 그 친구와 편하게 이야기하듯 예술세계를 나누고 감정, 철학, 삶을 나눠왔다.

2016년에는 ‘김주원의 독서일기’라는 코너를 통해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생각을 지면으로 전할 기회를 가졌다. 예술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동아일보를 통해 스스로 게을러질 수 있는 부분들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였다.

내가 발레리나로 이름을 알리고, 비상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때마다 동행한 동아일보가 곧 3만 호를 맞는다. 사실 요즘엔 종이신문을 주변에서 보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졌지만 나의 기사라면 모두 모아두는 부모님 덕분에 집에서 발견하는 신문은 꽤 많은 양의 동아일보다. 다방면의 심도 있는 기사는 당연하고, 발레처럼 대중적이지 않은 분야의 소식까지 꼼꼼히 알려주는 세심함 덕분에 한번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곤 한다. 나처럼 바빠서 신문을 세심하게 읽기 힘든 독자까지도 빨아들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귀하고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는 동아일보니 가능한 것이리라.

3만 호는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 4만 호, 5만 호, 10만 호 혹은 그 이상까지 동아일보는 우리와 함께 있을 테니. 그때마다 함께할 수 있고, 앞으로도 발레 대중화에 큰 힘을 실어주리라 믿는다.
 
김주원 발레리나
#발레리나#김주원#나와 동아일보#신문#동아콩쿠르#금상#김주원의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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