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떼이는 외국인, 일감 뺏기는 한국인… 감정골 깊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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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외국인 근로자 갈등]

“한국 사람 고용하라” 새벽 시위 15일 오전 ‘외국인 불법고용 반대 집회’가 열린 서울 은평구 수색동
 건설 현장. 아침 일찍 모인 장·노년층 한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 중심으로 건설근로자 고용하자” “근로조건 악화시키는 불법 고용
 단속하라”고 외쳤다. 윤솔 기자 solemio@donga.com
“한국 사람 고용하라” 새벽 시위 15일 오전 ‘외국인 불법고용 반대 집회’가 열린 서울 은평구 수색동 건설 현장. 아침 일찍 모인 장·노년층 한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 중심으로 건설근로자 고용하자” “근로조건 악화시키는 불법 고용 단속하라”고 외쳤다. 윤솔 기자 solemio@donga.com
16일 오전 6시 30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파란 안전모를 쓴 근로자 90여 명이 작업 전 안전체조를 시작했다. 이들은 철근 작업팀 근로자다. 이 중 90%는 외국인이다. 건설자재 해체팀 근로자 20여 명은 모두 한국인이다. 이들은 노란 안전모를 썼다. 현장팀장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체조 구령을 붙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출신 근로자들은 구령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전 7시 작업이 시작됐다. 노란 안전모를 쓴 근로자 사이에 “오늘은 별로 안 춥네” “일할 만하네” 같은 대화가 오갔다. 반면 파란 안전모를 쓴 근로자들은 말없이 철근을 옮기기 시작했다.

○ “외국인이 물 흐려” vs “한국인이 부러워”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임의작업 금지’와 ‘禁止任意作業(금지임의작업)’이 나란히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곳의 전체 근로자는 309명이고, 외국인은 242명이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지만 이 현장의 ‘형틀’ 근로자 235명 중 180명이 외국인이다. 형틀은 콘크리트를 쏟아부을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중 대다수가 중국 출신이다. 작업 시작 전 통역사가 중국어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것은 이곳의 일상이다. 지난해 8월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근로자 400여 명에게 태극기와 오성홍기 스티커를 배부했다. 가로세로 각 3cm 크기다. 근로자들은 안전모 오른쪽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 현장 근로자의 80%가 중국 출신이다. 이들을 한국인과 구별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다.

건설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날수록 한국인들의 불만은 커진다. 외국인 근로자는 휴일근무 수당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휴식시간도 반납하고 일한다. 그렇잖아도 열악한 건설업 근로환경을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우려가 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최모 씨(40)는 “외국인은 20, 30대가 대부분인데 한국인은 내가 막내다. 나이 든 토종은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도 할 말이 있다. 서울 은평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Z 씨(27)는 “불법 체류 신분이라 일당을 떼여도 참아야 한다. 일한 만큼 받아가는 한국인이 부럽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 근로자들은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외부 식당 대신 숙소를 겸한 컨테이너 안에 모여 눈칫밥을 먹는다.

사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 모두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자리는 제한돼 있으니 경쟁이 치열하다. 때론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난다. 서로 작업을 빨리 끝내기 위해 공사 장비를 먼저 사용하는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한국인 근로자가 불법 체류를 신고해 시비가 붙기도 한다. 목수 김모 씨(29)는 “말이 안 통하니 욕설을 하게 되고 몸으로 싸우게 된다. 망치에 맞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 건설 현장 외국인 10명 중 8명 불법

건설 근로자 168만 명 가운데 외국인은 약 27만5000명(2016년·한국산업인력공단 통계)으로 추산된다.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둘러본 서울의 대형 건설 현장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가 70∼80%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나 관련 기관 모두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외국인 건설 근로자의 81.4%에 달하는 22만4000명은 불법 고용 근로자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는 비용을 아끼려는 시공사와 인력 공급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하청업체, 단기간에 많이 벌려고 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인력 하청업체는 인력 공급업자인 이른바 ‘오야지’에게 재하청을 준다. 이들은 급여가 높고 법 조항을 따져야 하는 한국인보다 불법 체류 외국인을 선호한다. 전국건설노조 관계자는 “외국인을 많이 고용해야 중간 마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외국인 근로자들은 ‘오야지’와 업체 사장에게 갖가지 명목의 ‘수수료’를 낸다. 일을 시작하고 첫 한 달 동안 급여를 받지 않는 ‘깔아 놓기’, 작업 시간이 아니라 작업량으로 급여를 주는 ‘물량 떼기’ 관행도 여전하다. 조선족 근로자 L 씨(46)는 “10여 명의 팀원이 수수료 명목으로 최근 두 달간 1200만 원을 뜯겼다. 임금 4400만 원도 밀려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정다은·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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