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 자살생각… 김치찌개 함께 먹자” 얼굴 몰라도 SNS로 위로 나누는 청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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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대나무 숲’에 자살 예고 글 뜨면 온정 댓글 줄잇고 경찰신고해 막아

“우울이 저를 집어삼켜요. 이 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2일 서울 A대학 ‘대나무 숲’(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순식간에 댓글 400여 개가 이어졌다. 대부분 또래 대학생들이 적은 글이었다. “저도 돈이 없지만 같이 따뜻한 김치찌개에 밥 말아 먹으며 이야기해 봐요. 열 번이라도 살 테니 연락 주세요. 010-××××-××××” “저도 치료 중이라 그 마음 알아요. 하지만 지금 댓글 수만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등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페이지를 가득 메웠다.

비슷한 시간 해당 대학이 있는 관할 경찰서에 수십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국 각지에서 “A대학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대학생이 있는 것 같다”고 전화를 건 것이다. 경찰서 실종수사팀은 곧바로 글을 올린 사람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확보했다. 해당 대학 기숙사 내 IP주소였다. 확인 결과 다행히 당사자는 무사했다.

페이스북 대나무 숲이 따뜻한 말로 또래 친구들을 살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대나무 숲은 2013년부터 대학별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주로 익명으로 사랑 고백이나 잡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취업난과 극심한 경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20대가 늘어나면서 대나무 숲은 ‘익명 상담소’ 역할까지 하고 있다.

16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2년 5만2000명에서 2016년 6만4000명으로 4년 새 20%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 40∼50대 우울증 환자는 줄었다. 대나무 숲에 종종 고민 글을 올리는 대학생 최모 씨(23·여)는 “상담받기에는 시간도 돈도 없다. 그래서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 종종 대나무 숲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또 다른 대학 대나무 숲에도 삶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누구도 제 우울증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아요. 내일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낼 거예요.” 게시자는 구체적인 장소와 방법까지 적었다. 이때도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하며 “같이 차 마시며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저도 극단적 선택을 했었다. 지금 인생은 덤이다. 절대 죽지 말라”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이튿날 게시자는 “한강에 갔는데 한 여학생이 뛰어와 아무 말 없이 핫팩을 건네줬다. 밤새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고맙다”란 글을 올렸다.

청년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와 연락처를 건네는 이유는 ‘공감’이다. 댓글로 연락처를 남긴 여모 씨(32)는 “나 역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어 그 마음을 이해한다. 힘들게 살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대나무 숲을 자주 이용하는 이모 씨(26)는 “댓글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글에 공감하며 나도 댓글로 그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또래의 고민을 보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진심 어린 위로를 할 수 있다. 익명이라 더 솔직하게 고민을 드러낸다. 진솔한 위로가 오가다 보니 이런 문화가 더 활발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송영찬 기자
#자살#청년#sns#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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