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따라 대응수위 이견… 법무부, 조율 안된채 불쑥 강경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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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 혼란]‘거래소 폐쇄’ 혼선 왜 생겼나

가상통화 광풍(狂風)을 둘러싼 정부 혼선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시장의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혼란의 신호탄이 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11일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방안에 대해선 ‘장기적 검토 과제’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설익은 대책 발표와 청와대의 부인, 정책 재검토로 이어진 ‘오락가락’ 대응으로 투기심리가 들불처럼 휩쓸고 있는 가상통화 시장의 혼란상을 정부가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가상통화 시장은 12일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였다.

○ 부처 힘겨루기로 촉발된 대혼란

정부는 이날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가상통화 대책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선 전날 박상기 장관이 제시한 가상통화 거래소 폐지 특별법 제정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상통화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문제에 있어서는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거래소 폐쇄 등 고강도 대책과는 거리를 뒀다. 가상통화 규제 수위를 둘러싼 부처 간 이견이 여전함을 보여준 것이다.

정부가 가상통화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 말부터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청년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들고 있고 범죄에도 이용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다. 정부는 12월 초 법무부를 주무부처로 관계부처들이 참여하는 가상통화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월 11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해 가상통화 대책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규제 수위를 둘러싸고 관련 부처들이 이견을 드러냈다. 가상통화 대책 주무부처를 맡은 법무부와 금융위원회가 거래소 폐지 등 강경책을 주장했지만 기재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 결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13일 가상통화 투기 과열 범죄 대응 방안을 내놓으면서 거래소 폐지 방안 등 고강도 규제는 뺐다.

하지만 정부가 ‘솜방망이’ 대책을 내놨다는 평가와 함께 가상통화 시세가 오히려 급등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자 정부 내 강경 기류가 힘을 얻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28일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가상통화 거래소 완전 폐지를 뼈대로 한 대책을 다시 내놨다.

11일 박 장관의 발언 역시 이 같은 기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정부 소식통은 “당초 박 장관의 원고에는 ‘아직 협의 중’이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회견 과정에서 발언 강도가 세졌다. 이 기회에 부처 간 이견을 정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청와대 컨트롤타워 부재에 정책 불신 커져

가상통화 시장의 과열 현상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데는 부처 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신기술인 가상통화에 대한 정부의 정의조차 불분명하다 보니 이에 맞는 정책이 부처 간 조율을 거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정부 내에선 가상통화를 지칭하는 용어부터 ‘가상통화’ ‘가상화폐’ ‘암호화화폐’ 등으로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산업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혼란이 아니라 정부가 냉정하게 지켜보고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상통화 시세가 급등하면서 대학생, 주부, 심지어 중고생도 시장에 뛰어드는 등 ‘코인 좀비’가 양산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과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과 구두 개입으로 가상통화 시장에 정부 정책에 대한 ‘내성’만 높여놓았다는 것.

청와대 내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청와대 정책실이 국무조정실에 정책 조율을 맡기고 뒤로 빠지면서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경제수석실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첫 가상통화 대책을 내놓을 당시 법무부 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이후 가상통화 시세가 급등하자 고강도 규제 방안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조만간 가상통화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법무부가 제안한 거래소 폐지 역시 중장기 대책으로 검토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거래소 폐지는 법무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와의 협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정성택 / 세종=김준일 기자
#가상통화#거래소#폐쇄#강경책#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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