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불가역적’ 문구 삭제 건의했지만 박근혜 청와대가 외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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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합의 보고서 발표

“잊지않겠습니다” 2017년 마지막 수요시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기 수요 시위 및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참가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놓인 300개의 의자에 앉아 ‘빈 의자에 새긴 약속’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 행위극은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피해자들의 뜻을 이루겠다는 다짐의 뜻을 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잊지않겠습니다” 2017년 마지막 수요시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기 수요 시위 및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 참가자들이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놓인 300개의 의자에 앉아 ‘빈 의자에 새긴 약속’ 행위극을 하고 있다. 이 행위극은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피해자들의 뜻을 이루겠다는 다짐의 뜻을 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7일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보고서로 2년 만에 위안부 합의 과정의 민낯이 드러났다. 2015년 12월 28일 발표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면 합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TF 조사 결과 합의 비공개 부분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들을 설득하겠다는 것도, 해외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주체도 모두 한국 정부였다. 사실상의 이면합의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가 내기로 한 10억 엔도 객관적인 산정 기준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박근혜 청와대가 주도한 위안부 합의

TF는 “한일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기까지 총 8차례 고위급 비공개 협의가 있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지지부진했던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2015년 초 청와대가 가져오면서 실질적인 내용은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나선 고위급 협의에서 논의됐다는 것이다.


발표 당시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불가역적’이라는 표현도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먼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은 일본 측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으나 당초 취지와는 달리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으로 의미와 맥락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가 해당 표현을 삭제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짚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는 “저희도 진짜 알고 싶은 부분이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5년 합의를 발표했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이날 논평을 내고 “우리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들은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대통령 방일 등 후속 외교협의를 통해 풀려고 했지만 탄핵 등 사태로 추진이 어렵게 됐다”고 해명했다.

○ 외교 자충수로 돌아올 비공개 부분 공개

TF는 이날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이유로 위안부 합의의 비공개 부분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제3국에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하지 못하게 관여하거나 ‘성노예(sexual slavery)’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나, 일본 쪽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전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상대국과의 비공개 합의 부분을 외부에 알린 것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 협상을 하면 언제든 공개될 수 있구나’ 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3가지 비공개 언급 내용이 사실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내용도 아닌데 얻을 것 하나 없이 장래 한국 외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도 말했다. 윤 전 장관도 “복잡한 고난도 외교협상 결과와 과정을 국제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전례 없는 민간 TF를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앞으로 우리 외교 수행 방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양국의 역사적 화해를 원했던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TF 보고서도 “한일 관계 악화는 미국의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미국이 양국 역사 문제에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시사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외교 소식통은 “워싱턴에선 한일 위안부 갈등이 장기화되자 일종의 ‘피로감’이 확산됐다. 하루빨리 위안부 논란을 끝내자는 게 한미일의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도 한국이 다시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일본에선 또다시 ‘한국이 골대를 옮기고 있다’고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난관 예상되는 정책 결정

보고서 발표 후 향후 조치도 주목된다. TF 결과 발표 후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모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진정성 있고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 학계 의견을 수렴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것이지만, 일본이 시종일관 위안부 합의 파기는 없다고 맞서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은 이날 오후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TF 위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TF의 자의적 평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TF 결과와 피해자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 한일 합의 무효화 △화해치유재단 해산 △위로금 10억 엔 즉각 반환 등을 요구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권기범 기자
#박근혜 정부#위안부합의#외교#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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