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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백수 탈출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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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백수 탈출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정양환기자 입력 2017-12-16 03:00수정 2017-12-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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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박지리 지음/264쪽·1만3000원·사계절
책을 덮자마자,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다.

솔직히 소설 ‘3차 면접에서…’를 만나기 전까지 이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단 얘기만 들었을 뿐. 하지만 책을 읽은 뒤, 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이렇게 굉장한 소설가가 어쩌다가.

‘3차 면접에서…’는 길지 않은 분량인지라 줄거리도 단출하다. 갈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는 세상. M은 그간 마흔여덟 번쯤 면접을 봤지만 여전히 백수 신세다. 하지만 드디어 그에게도 서광이 비추나. 떨어질 거란 짐작과 달리 한 제과회사에 합격한다. 곧장 4주간 연수원에 입소한 M. 하지만 그 앞엔 예상치 못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이 소설, 희한하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처음 보는 장소에서 깬 기분이 이럴까. 실은 표지에 나오는 ‘문학을 배워본 적 없는 젊은 작가’란 설명에 수긍이 간다. 여타 소설에서 익숙했던 작법이나 묘사가 없다. 때론 거칠다 못해 흐리터분할 정도로.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칭칭 온몸에 감겨오는 뭔가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죄를 눈감아주는 거예요.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 나를 이해하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

뭣보다 주인공 M의 감정선은 쫓아가는 내내 긴장감이 탁월하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막상 거리를 두고 보면 별거 아닌데. 읽는 내내 불안과 우려와 짜증과 낙담이 뒤죽박죽 밀려온다. 그래, 어쩌면 그의 혼란을 ‘비정상’이라 치부하면 그만일지도. 하지만 다들 안다.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진 않지만, 마음 어딘가를 스쳐갔던 악의(惡意)를. 어쩜 우리는 21세기 한국판 ‘이방인’(알베르 카뮈)을 만난 건지도 모르겠다.

박지리 작가는 지난해 가을 31세로 삶과 이별했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포함해 장편 다섯과 단편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내년 하반기쯤 마지막 유작이 공개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더 이상 그의 자식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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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박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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