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탄압과 억압 뚫고… 86년간 쌓아올린 ‘700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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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700호/1931년 11월 창간호∼2018년 1월호]
다큐 광주-이후락 증언 등 권력에 맞선 신동아 10대 사건 & 특종

《1931년 11월에 창간된 신동아가 2018년 1월호로 지령 700호를 맞았다. 국내 종합잡지 사상 최초, 최고의 대기록이다. 신동아는 지난 86년간 일제를 포함한 각종 권력의 탄압과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며 ‘민족의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권력의 폐부를 직접 겨냥하는 날카로운 비판 기사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적 상황에선 생소했던 ‘탐사 저널리즘’의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신동아는 한차례 폐간의 아픔을 겪는 등 갖은 탄압과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신동아는 지령 700호를 맞아 대표적 시사 월간지로서의 언론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그간의 특종 기사와 주요 사건을 압축 정리했다. 각계각층 인사가 보내온 축하와 당부의 말도 소개한다. 》 
 
1. 1936년 일장기 말소와 강제 폐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시상대 사진을 게재하면서 가슴의 일장기를 삭제한 사건. 당시 총독부는 신동아 9월호와 동아일보 8월 25일자에 게재된 사진을 문제 삼았다. 이 일로 동아일보는 무기정간당하고 신동아는 폐간됐다.
 
 
2. 1968년 12월호 ‘차관(借款)’ 기사 파동

당시 갖가지 특혜 의혹과 폭리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드높아 특별 국정감사까지 받았던 차관 문제를 정밀하게 해부한 심층보도. 정부가 일부 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대신에 정권 유지 자금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기사를 쓴 기자와 신동아 부장, 주간 등이 줄줄이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3. 1975년 광고 탄압

1974년 말 시작된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사에 대한 광고 탄압이 자매지로도 확산돼 1975년 신동아 3월호의 경우 평소 광고(컬러 4면, 흑백 14면)의 90%가 줄었다. 이로 인해 각 호 정상 발간이 열흘 가까이 지연됐다.
 
 
4. 1985년 7월호 ‘다큐멘터리 광주’

폭압적인 정치 상황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됐던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정밀 취재한 최초의 보도물. 5·18민주화운동 재평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출간 직후 당시 출판국장과 신동아 부장, 담당 기자가 보안사령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심한 가혹행위를 당하기도 했다.
 
 
5. 1987년 10월호 ‘이후락 증언’ 특종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을 만나 당시 사건의 진상을 기록한 기사. 정보기관의 기사 삭제 요구를 거부한 신동아 편집실과 동아일보사 기자들이 철야농성에 들어가고 외신들이 이를 집중 보도하면서 정치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의 압력을 물리쳐 끝내 기사를 게재한 이때의 일로 신동아 편집실은 이듬해 한국기자상과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이때 한국 잡지 사상 최초로 판매부수 40만 부를 돌파했다.
 
 
6. 2001년 12월호 ‘수지 킴 사건 추적기’

‘여간첩의 납북 미수’로 발표됐던 1987년 이른바 ‘수지 킴 사건’의 실체를 오랜 노력 끝에 파헤친 기사. 억울한 누명을 써야 했던 김 여인의 사연과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왜곡했던 정보기관의 조작 및 은폐는 이후 ‘윤태식 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기자상과 삼성언론상을 수상했다.
 
 
7. 2004년 9월호 ‘신기남 의장 부친 일본군 헌병오장’

부친의 친일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던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친이 실제로 일본군 헌병오장으로 근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인물이었음을 폭로한 발굴 특종. 신 의장의 거짓해명 사과와 의장직 사퇴로 이어진 이 기사는 사내 대특종상과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8. 2006년 통일교 신도 난입 사태

2006년 8월 22일, 9월호 ‘대해부 통일교 왕국’ 기사에 불만을 품은 통일교 신도 700여 명이 신동아 편집실에 몰려와 대형 유리창을 깨고 사무실 집기 등을 부순 사건. 종교단체의 언론에 대한 폭력 사태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계 전체의 공분을 촉발했다.
 
 
9. 2007년 검찰 압수수색 저지

검찰이 2007년 7월 26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동아미디어센터 7층 전산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사건. 검찰은 같은 해 신동아 6, 7월호에 보도된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 기사를 작성한 두 기자의 모든 e메일 목록과 내용을 확보하려 했으나 동아일보사 출판국·편집국 기자들의 연좌 저지가 수일간 이어지면서 압수수색은 끝내 무산됐다.
 
 
10. 2010년 4월호 김우룡 인터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김우룡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MBC 내부 인사와 관련해 “김재철 MBC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맞고 깨진 뒤 좌파를 정리했다”는 취지로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신동아#700호#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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