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비선 보고’ 문건에… 결국 뚫린 우병우의 방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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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3차례 영장끝 구속수감
처가 땅 의혹으로 수사 시작… 1년4개월간 검사 30여명 투입
2월, 4월 국정농단 영장 모두 기각… 레이저 눈빛-황제 조사 논란도
영장심사서 5시간반 법리 다툼… 구속 예감한듯 수감 첫날 ‘평온’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15일 새벽 구속됐다. 처가와 게임회사 넥슨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땅 매매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4개월 만이다. 법원에서 두 차례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냈던 우 전 수석의 발목을 잡은 것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찾아낸 수상한 내부 보고서였다.

○ 국정원 보고서가 ‘스모킹 건’

지지부진하던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전환점을 맞이한 건 TF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TF는 추 전 국장이 우 전 수석에게 정상적인 보고 계선을 무시하고 ‘비선 보고’를 한 의혹을 조사하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추 전 국장이 보고서를 출력할 때 국정원 로고(워터마크)가 찍힌 보안용지 대신 일반 용지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 문제의 보고서에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54)의 동향과 특별감찰관실의 우 전 수석 감찰 진행 상황 등이 담겨 있었다.

TF 조사 결과 보고서 내용은 특별감찰관실에 파견근무를 나갔다 지난해 초에 복귀한 국정원 직원 K 씨가 추 전 국장에게 은밀하게 보고한 것들이었다. 추 전 국장은 지난해 7월 K 씨에게 “이석수 감찰관이 정치 욕심이 있는 것 같다. 감찰관실 인맥을 동원해 이 감찰관과 야당 국회의원들의 친분, 우 전 수석 감찰 착수 배경 등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는 K 씨에게 “확인한 내용을 첩보보고 시스템에 올리지 말고 따로 보고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한다.

추 전 국장은 우 전 수석과 직접 연락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민정수석실에 행정관으로 파견근무 중이던 국정원 직원을 ‘메신저’로 이용했다. 그는 지난해 8월 2일 국정원 후배인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해라. 특별감찰관실의 감찰관보와 감찰과장이 강경한 입장에서 감찰을 주도하는 반면 파견 직원은 민정수석 눈치를 보는지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실제로 민정비서관을 거쳐 우 전 수석에게 보고됐다. K 씨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 이 전 감찰관 사찰보고서 등도 같은 경로로 우 전 수석에게 전달됐다.

국정원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올 10월 추 전 국장을 전격 체포했다. 추 전 국장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 앞에 무너졌다. 그는 “우 전 수석이 전화로 지시해 이 전 감찰관을 사찰했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 수사 투입 검사만 30여 명

검찰이 지난해 8월 우 전 수석 처가의 부동산 매각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 특별수사팀을 꾸린 이후 최근까지 수사에 투입된 검사 수는 30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올 2월과 4월 각각 우 전 수석에 대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국정 농단을 묵인·은폐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검사 시절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던 우 전 수석은 스스로를 변호하고 방어하는 일도 수사처럼 치밀하고 빈틈없이 했다. 특검이 처음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는 밤새 구속영장 내용을 철저하게 분석한 뒤 민정수석실 관계자 등을 찾아다니며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의 자술서를 받아냈다. 이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기각 결정을 이끌어낸 결정적 ‘한 방’이 됐다.

법원에서 두 차례나 영장 기각 결정을 받았지만 우 전 수석을 바라보는 여론은 늘 곱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뻣뻣해 보이는 태도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처음 검찰에 출석할 때는 질문을 하는 기자를 쏘아보는 ‘레이저 눈빛’으로 욕을 먹었다. 또 검사실에서 팔짱을 낀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황제 조사’ 논란에 휘말렸다.

수사가 장기화하자 우 전 수석의 태도도 차츰 변해갔다. 그는 지난달 29일 검찰 출석 때는 “1년 사이 포토라인에 네 번째 섰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우 전 수석은 5시간 반 동안 사실관계부터 법리까지 구속영장 내용 대부분을 치열하게 다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모셨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똑같은 10.6m² 크기의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됐다. 그는 구속될 것을 예감했다는 듯 수감 첫날을 평온하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전주영 기자
#우병우#문건#국정원#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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