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조건없는 北과 대화’ 제동… 구겨진 틸러슨의 초대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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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진정성 보여야 대화 가능”
틸러슨 발언 하루만에 뒤집어… 국무부도 “美 입장 바뀐것 없다”
틸러슨 또 트럼프와 이견 노출… 워싱턴 일각 “장관직 마칠 시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 지 하루 만에 백악관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백악관이 “북한에 대한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으면서 일단 김정은에 대한 ‘틸러슨의 초대장’은 빛이 바래게 됐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 시간) 워싱턴 공개행사에서 틸러슨 장관의 조건 없는 대화 발언을 언급하며 “미국이 대북 압박을 줄이거나 보상 요구에 굴복하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정책적이고 정기적으로 강탈을 꾀하는 정권이기 때문에 미국이 추구해야 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비핵화”라며 “비핵화야말로 우리에게 현실적인 유일한 목표”라고 설명했다.

앞서 마이클 앤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근본적인 행동 개선 없이는 어떤 대화도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고려하더라도 지금은 대화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언론사들에 보낸 e메일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북한이 먼저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 정권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개선할 때까지 북한과의 협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데 합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도 상황 정리에 나섰다.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국무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고, 틸러슨 장관의 발언도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게 아니다”라며 “한반도 비핵화가 여전히 미 정책의 목표이고, 이런 점에서 백악관과 국무부의 입장이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양측 사이에 ‘북한의 도발 중단’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에 방점을 뒀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백악관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하루속히 대화에 복귀할 것을 일관되게 촉구해 오고 있고, 틸러슨 장관 역시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이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틸러슨 장관에 대한 백악관의 불편한 기류가 존재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른 소식통은 “틸러슨 장관과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화 창구를 열기 위해 드라이브를 거는 데 대해 백악관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틸러슨 장관의 전날 제안이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백악관이 제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복되는 트럼프-틸러슨 사이의 갈등도 이번 파문의 원인으로 꼽힌다. 틸러슨 장관은 7월 한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자 “멍청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된 뒤 갈등설이 불거졌다.

지난달 말 뉴욕타임스는 틸러슨 장관을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교체할 거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는 “이번 파동으로 틸러슨이 장관직을 마칠 시간이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미국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국무부와 백악관의 상반된 메시지에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파동으로 대화 시점이 더 미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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