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주성원]평창 흔든 헤일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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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도살자(Dragon Slayer)’라는 별명을 가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게서 외교관적 레토릭(수사·修辭)을 듣기 어렵다. 강경하고 직설적이다. 북한에는 “전쟁이 나면 정권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데 대해서는 “국민의 의지를 따른 것”이라고 언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직설적인 화법은 외교 경험이 없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그런 헤일리 대사가 명확해야 할 부분에선 오히려 여운을 남겼다. 미국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에 대해 6일(현지 시간) “더 생각해볼 문제”라고 한 것.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여겨지던 그의 발언이어서 파문은 컸다. 도핑 스캔들로 인한 러시아의 출전금지 직후 개인 자격 출전 허용으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평창의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롤러코스터를 탔다.

▷결국 백악관과 국무부가 파문 진화에 나섰다. 헤일리 대사가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창에 미국 전체 선수단이 참가한다고 확인했다. 사실 미국의 올림픽 참가 여부는 정부가 아니라 독립기구인 미국올림픽위원회(USOC)가 결정하는 사안이다. 말을 아껴야 할 외교관으로서, 더구나 소관도 아닌 일을 입에 올리는 우(愚)를 범했다. 여기에 국내 일각에서도 동요가 있었다. 국가적 잔치를 앞두고 신중해야 했다.

▷헤일리 대사로서는 평창 올림픽을 북한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평화의 상징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지원하기 위해 연내 북한 방문을 추진한다는 구상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4년 동안 땀 흘려온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국가 자격으로 출전 금지를 당한 러시아도 선수들만큼은 오륜기를 달고 출전하는 것을 허용했다. 어쨌든 헤일리의 결자해지(結者解之)로 평창의 분위기가 다시 오름세를 타게 됐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길 바란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니키 헤일리#유엔 주재 미국대사#평창올림픽#토마스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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