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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보름 앞두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예수의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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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보름 앞두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예수의 탄생지’

박민우 특파원 입력 2017-12-11 03:00수정 2018-02-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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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도 인정 후폭풍]화약고 된 예루살렘
박민우 특파원 현지 취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발표로 긴장감이 감도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말구유광장의 9일 모습. 베들레헴=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박민우 특파원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11km 밖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목에서 검문소를 만났다. 커다란 톨게이트처럼 생긴 곳을 통과하려면 매표원 대신 총을 든 군인들을 지나야 했다. 거의 도착해서는 높이 8m, 두께 50c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지나야 했다. 이스라엘이 2002년 8월부터 쌓기 시작한 분리장벽이었다. 어렵게 도착한 그곳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지만 고요하고 거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가 방문한 9일 토요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어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주민이었다.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유대인 운전사들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베들레헴에 가길 꺼린다고 했다.

택시가 검문소를 지나자 창밖 풍경이 변했다. 상점 간판들은 히브리어보다 굴곡진 아랍어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키파(유대교 전통모자)로 정수리를 가린 정통파 유대인들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2000년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리즘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쌓아 올렸다. 하지만 바로 이 거대한 장벽 때문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오랜 유대관계는 거의 무너졌다. 베들레헴을 비롯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세워진 장벽의 길이는 700km에 달한다.

장벽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팔레스타인 택시 운전사는 재빨리 차량의 창문을 닫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를 가리켰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타이어를 태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스라엘 군경도 일부 도로를 통제해 좁은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짜증 섞인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길게 이어진 베들레헴 장벽에 자유를 향한 갈망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벽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벽화 속에서 키파를 쓴 채 ‘통곡의 벽’을 만지며 “내가 네 형제를 세우겠다”고 읊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는 검은색 엑스(X)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베들레헴에 사는 청년 사이프 수보흐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연설한 다음 날 분노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벽화 속 트럼프 대통령을 흉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장벽의 망루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 트럼프 대통령의 벽화도 눈에 띄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장벽이 시작되는 바로 이곳을 향해 쉴 새 없이 돌팔매질을 하고 화염병을 던졌다. 이스라엘 군인들도 시위대를 향해 수백 발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탄을 자동 발사하는 군용 차량이 돌진하며 하늘로 최루탄을 쏘아 올리자 새하얀 연기가 눈처럼 시위대를 덮쳤다.
박민우 특파원

베들레헴 택시 운전사 오사마 알리 씨는 “하루 종일 연기가 치솟고 있다”며 “어제 가자지구에서 2명이 사망하면서 시위가 더 격렬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이스라엘 군인이 쏜 고무총탄에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8일 금요 합동 예배 이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부상자는 총 234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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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 기념 성당 앞의 말구유광장에는 관광객보다 호객꾼이 더 많았다. 평소라면 길게 줄이 늘어섰어야 할 성당의 좁은 문 안이 휑하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베들레헴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청년 압둘라 소베흐 씨는 “하루 평균 120∼150대의 투어 버스가 단체 관광객을 싣고 오는데 오늘은 55대밖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장 주변의 상점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이브라임 라이밀리아스 씨는 “대규모 관광 취소가 크게 늘었다”며 “관광업에 의지하는 베들레헴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개인 여행자들과 달리 단체 관광객과 순례객들은 안전을 더 크게 우려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라이밀리아스 씨는 “일본 정부도 베들레헴을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해서 더 이상 일본인 관광객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의 젊은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수도=예루살렘’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세상으로부터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팔레스타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미르 수베흐 씨는 “밖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지만 베들레헴처럼 유대인과 평화롭게 공존해 온 곳이 없다. 모스크와 성당이 마주 보고 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무슬림들은 기독교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TV를 장식하는 이스라엘 전역의 분쟁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느 때보다 슬플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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