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재판 독립 지키는게 첫째 임무”… 정치권에 유감 표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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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前대법원장 10주기 추념사
단호한 목소리로 ‘사법부 독립’ 강조… 일선법원에 ‘소신껏 재판’ 메시지
檢, 향후 영장재판에 영향 촉각… “과잉수사로 몰아 책임 넘겨” 불만도

선서하는 신임 법관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신임 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을 
앞에 두고 법관선서를 하고 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효암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 10주기 
추념식’에서 구속 적부심사의 의의를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선서하는 신임 법관들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신임 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을 앞에 두고 법관선서를 하고 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효암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 10주기 추념식’에서 구속 적부심사의 의의를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법원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격하고 적부심과 보석의 활용 확대 등 인권이 보장되는 재판 제도를 위한 기본 틀을 다지게 되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1층 대강당에서 열린 ‘효암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逝世) 10주기 추념식’에서 구속적부심 제도의 의의를 언급하며 정치권과 검찰의 ‘법원 흔들기’에 표명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재임 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1975년), 재미교포 홍선길 씨 간첩사건(1982년) 등에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피의자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내거나 원심을 파기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행사에서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대법원장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이 전 대법원장의 생애 앞에서 명료하게 깨달았다”며 A4 용지 7장 분량의 추념사를 9분간 단호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는 “법관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숭고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 “일선에 ‘소신껏 재판하라’ 메시지”

김 대법원장이 구속적부심이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점을 힘주어 언급한 것은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구속적부심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68),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64)과 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조모 씨(46)를 풀어준 일을 비난한 검찰과 정치권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구속적부심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19기)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방패막이를 자처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일선 법원에 ‘소신껏 재판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풀이된다. 법원 안팎에서는 그동안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장기화하고 관련 사건 구속자가 늘어나자 “구속영장 심사 기준이 예전에 비해 너무 느슨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법원 내에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그런 추세가 심해졌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구속적부심 판단을 지지한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이런 억측을 일축하고 영장재판 담당판사들에게 중립적이고 엄격한 재판을 하도록 독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김 대법원장의 발언이 향후 영장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검찰 수사관행 바뀔지 관심

김 대법원장 발언 등 법원의 구속적부심에 대한 시각에 검찰은 대체로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법원 스스로 내렸던 구속결정을 뒤집으면서 인권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검찰 수사를 ‘과잉 수사’로 몰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와 비교해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적부심에서 석방 결정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병헌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9)이 롯데홈쇼핑에서 불법 후원금을 받는 데 공모한 혐의로 구속됐던 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조 씨를 법원이 지난달 30일 풀어주면서 “‘밤샘조사’라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조사 때 자정을 넘길 경우 동의서를 받고 조사를 한다. 조 사무총장은 오전 1시경 긴급체포했기 때문에 ‘밤샘조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법원은 “구속적부심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피의자의 권리다. 검찰의 주장은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자세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장전담 재판부 출신의 한 판사는 “중요 사건에서 검찰은 얇은 영장 청구서만 제출했다가 영장심사 당일 수백 쪽짜리 의견서를 들이밀곤 한다. 이런 식이어서는 변호인을 대동해도 피의자가 제대로 된 방어권 행사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강경석 기자
#김명수#법원#사법부#독립#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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