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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민병선]일어나라! 짐바브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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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민병선]일어나라! 짐바브웨

민병선 국제부 차장 입력 2017-11-24 03:00수정 2017-11-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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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 지폐.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990원에 살 수 있다. 동아일보DB
민병선 국제부 차장
망과나니(안녕), 아미비.

우리가 만난 지 올해로 5년이 됐으니 고등학생이 됐겠구나. 2012년 이맘때 초등학교 6학년 소녀였는데…. 짐바브웨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국 선교사님이 준 병아리 50마리를 받고 고맙다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에이즈로 부모를 잃고 조부모와 사는 어려운 형편에 병아리를 키워 생계를 이어갈 꿈에 부풀어 있었지.

요즘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던 짐바브웨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고 있단다. 세계 최장기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93)이 21일 권좌에서 내려왔더구나. 선교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교민들은 모두 안전하고 현지 분위기는 소요사태 없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말하시더라.

주변에 너의 조국에 대해 이야기하면 신기해해. 짐바브웨는 한국에 아직 낯선 나라거든. TV 예능프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서 박보검을 비롯해 쌍문동 4인방이 찾아갔던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나라. 인플레이션이 심각해 100조 달러 지폐를 썼던 희한한 곳 등이 한국인이 짐바브웨를 기억하는 편린들이야.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를 990원에 팔고 있더구나. 쇼핑몰 상품 평가에 올라 있는 “점당 10조로 고스톱을 쳐도 큰 부담이 없겠다”는 댓글이 짐바브웨에 대해 우리의 이해 정도를 보여주는구나.

실제 가 본 짐바브웨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나라였어. 세계 3대 폭포라는 장엄한 빅토리아 폭포, 악어와 하마가 노니는 생태계의 보고 잠베지강, 뭉게구름이 점점이 박힌 파란 하늘, 내가 사는 행성이 둥글다는 걸 알게 한 끝없는 평원…. 유럽 도시처럼 번듯한 건물이 가득한 수도 하라레와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악수를 건네던 친절한 사람들도 기억하고 있어. 이런 빼어난 환경 때문에 한때 짐바브웨는 퇴임한 외교관들이 여생을 보내고 싶은 나라로 손꼽혔지. 내 버킷리스트에는 그곳을 다시 방문하는 게 담겨 있단다.

거기서도 코리아는 낯선 나라였지만 서서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었지. 현지 국영방송 ZBC는 오후 8시 프라임 시간대에 한국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내보내더구나. 더빙도 없이 영어 자막에 한국어 대사가 그대로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난 한류가 이 먼 곳에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단다. 하라레 시내의 북한이 지어준 체육관도 눈길을 끌었어.

지금은 사정이 어렵지만 예전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선진국이었다는 걸 알고 있어. 영국이 아프리카 식민지로는 마지막으로 1980년 짐바브웨에서 물러났지. 그들은 아름다운 이 나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 독립 전 짐바브웨 국립대는 농생물학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이었고, 비옥한 토양 덕분에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리며 살림살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 다이아몬드, 크롬, 백금과 ‘산업의 비타민’이라는 희토류의 매장량이 풍부하고 고속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잘돼 있지.


하지만 무가베가 장기 독재를 시작하며 짐바브웨는 나락으로 떨어졌어. 최근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2000∼2010년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5000억%나 되더구나. 1980년 당시 짐바브웨의 출생 시 평균 기대수명은 60세로 가나(52세)와 케냐(58세)보다 높았단다. 하지만 2015년 짐바브웨의 기대수명이 여전히 60세인 데 비해 두 나라는 70세에 육박하고 있어. 하루 수입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전체의 50%를 넘고 에이즈 보균자(HIV 감염자)가 인구의 20%가 넘는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야.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가능성이 많은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은 건 후진적인 정치체제였어. 이제 37년간의 독재를 끝냈으니 희망이 보일 거라고 나는 믿어. 이번에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에머슨 음낭가과 전 부통령(75)도 훌륭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 무가베 밑에서 오랫동안 수족처럼 일한 그가 전임자의 독재정치를 이어가지는 않을지 걱정이 돼. 하지만 짐바브웨인들은 무가베의 퇴진을 보며 변화의 희망을 가졌을 거라고 믿어.

다른 아프리카의 독재자들도 떨고 있을 거야. 35년간 집권한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과 오비앙 응궤마 음바소고 적도기니 대통령, 33년 동안 독재를 한 드니 사수응게소 콩고공화국 대통령 등이 짐바브웨를 보며 긴장하지 않을까.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처럼 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봄이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교사가 돼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너의 꿈을 잃지 말고 정진하렴. 그런데 걱정이 되는구나. 너의 몸속 부모님이 물려준 에이즈 바이러스를 잘 다스리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서구 여러 나라가 약을 충분히 지원하고 있지만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아미비, 부디 살아 있기를….
  
민병선 국제부 차장 bluedot@donga.com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짐바브웨 인플레이션#무가베 장기독재#에머슨 음낭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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