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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부상과 싸우며 응급헬기 탑승… 외상센터 간호사 달래주는 한마디 “괜찮아 엄마, 사람 살리고 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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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부상과 싸우며 응급헬기 탑승… 외상센터 간호사 달래주는 한마디 “괜찮아 엄마, 사람 살리고 왔잖아”

조건희 기자 , 이미지 기자 , 김윤종 기자 입력 2017-11-24 03:00수정 2017-11-2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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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 간호사의 눈물]환자 이송-수술중 부상-화상 예사
간염-매독-결핵균에 감염되기도… 앉아 쉴 틈도 없이 다시 헬기 출동
환자 숨지면 극도의 심리적 상처… “오늘도 살렸다” 보람에 기운차려
사정없이 흔들리는 헬기에서 부상을 입어도, 온갖 감염균이 섞였을지 모르는 환자의 피를 뒤집어써도 외상센터 의료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외상전담 간호사 송서영 씨(왼쪽)가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를 경남 앞바다에서 실어오며 소생술을 하고 있다. 송서영 씨 제공
“아이 몸이 아직 이렇게 따뜻한데, 왜 심장이 멈췄다는 겁니까!”

30대 남성이 이렇게 울부짖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외상소생실(T-Bay)은 적막에 잠겼다. 지난달 높은 곳에서 떨어져 급히 외상센터로 옮겼지만 수술실까지 가지도 못한 채 숨진 다섯 살 아이의 아버지였다. 외상전담(헬기 출동) 간호사 송서영 씨(36·여)가 ‘환자의 가족 앞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며 눈물을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환자를 옮기다가 무릎에 멍이 든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헬기로 환자를 실어 나르며 응급소생술을 하는 송 씨는 이처럼 크고 작은 부상뿐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린다.

최근 귀순 중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중증외상센터 간호사 중에는 이송 헬기를 타다가 유산한 사람도 있고, 손가락이 부러져 퇴직한 사람도 있다”며 “환자를 구하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은 정작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던져져 있다”고 토로했다.

이 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중환자실과 일반실에서 일하는 전담 간호사는 125명. 생명이 위태로운 중증외상 환자 100명을 돌보기 위해 간호사들은 매일 13시간 일하고 11시간 쉬는 맞교대 체제로 일한다. 송 씨는 센터가 생긴 2010년부터 줄곧 이 교수와 함께 사투의 현장을 지켜왔다.

헬기 출동은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경기 평택시의 한 건설 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40대 후반 남성 환자를 데려올 때가 그랬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착용시켰다. 그때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100m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헬기를 띄워야 했다.

2003년 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송 씨도 심한 스트레스 탓에 한 차례 병원을 떠난 적이 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2009년 첫아이를 낳고 나니 예전에 돌봤던 환자의 모습이 더 자주 떠올랐다. 갓난아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30대 남성, 그 아이를 안은 채 눈물 흘리는 아내…. 송 씨는 이듬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가장 큰 버팀목은 외상센터 동료들과 두 딸의 존재다. 숨이 거의 남지 않았던 환자를 의료진이 똘똘 뭉쳐 살리고 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응급 환자를 돌보느라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겼을 때도 다섯 살 난 둘째의 의젓한 한마디에 간신히 기운을 차린다. “괜찮아 엄마, 사람 살리고 온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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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는 간호사가 가장 기피하는 근무처다. 인력이 부족해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송 씨처럼 중증외상센터에서 7년 넘게 버틴 간호사는 드물다. 모처럼 지원자가 와도 현실을 마주한 뒤 충격을 받아 사흘 안에 그만두는 사례도 많다.

중증외상센터의 간호사들은 환자를 이송하거나 수술하다가 다치는 일이 잦다. 내부 온도가 180도까지 올라가는 고압 증기 멸균기에서 급히 수술 도구를 꺼내다가 종종 화상을 입는다.

수술 중 환자의 혈액 등을 통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B형 간염, 매독균에 감염되는 일도 흔하다. 어느 날 숨이 차 폐 검사를 받아 보면 환자로부터 결핵이 옮은 상태라는 얘기는 중증외상센터 내에선 화제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의료진은 “HIV 검사 키트 등을 사용한 뒤 건강보험금을 청구하면 ‘불필요한 검사’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삭감을 결정하는 일이 잦다”고 한숨을 쉰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것보다 더 오래간다.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끝내 숨지면 자책감이 밀려온다. 환자가 자녀 같은, 혹은 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일 땐 더 심하다. 한 권역외상센터는 소속 간호사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도를 검사해 보니 상당수는 심리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부산대병원에 헬기로 도착한 중증외상환자를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다급하게 옮기고 있다. 부산대병원 제공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전국 권역외상센터 9곳의 전담 간호사는 591명이다. 이들은 최대 708명의 환자를 동시에 돌봐야 한다. 모든 간호사가 24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해도 간호사 대비 환자의 비율이 0.7명인 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을 중환자실 1.2명, 일반실 2.2명으로 느슨하게 규정한 국내 기준을 지키는 것도 벅차다. 목포한국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은 전담 간호사(19명)가 병상 수(20개)보다도 적어 7등급으로 나뉜 간호등급 중 6등급을 받았다. 중환자실과 일반실의 간호등급이 전부 1등급인 곳은 아주대병원뿐이다.

전문가들은 간호인력 부족의 핵심 원인으로 정부의 지원 체계가 전혀 없다는 점을 꼽는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면 전담 전문의 1명당 연봉 1억2000만 원을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전담 간호사에게 지원되는 인건비는 한 푼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응급의료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보건복지부의 내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중증외상 전문진료체계 구축,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육성 등에 쓰이는 응급의료 관련 예산이 올해 1250억 원에서 내년 1118억 원으로 삭감됐다. 복지부 전체 예산은 6조5788억 원이나 늘었지만 대부분 아동수당 신설과 기초연금 인상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의학과와 외상외과 배정을 기피하는 전공의를 끌어 모으기 위한 ‘전공의 수련보조 수당’ 지원 예산도 30억 원에서 24억 원으로 줄었다.

이국종 교수는 “격무와 신체 및 정신적 피해에 시달리는 중증외상센터 간호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격무지 기피’ 현상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미지·김윤종 기자
#중증외상센터#간호사#정부#예산#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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