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동아]담배도 안 피우는데… 여성 폐암환자 갈수록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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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폐암학회 ‘폐암의날’ 행사. 대한폐암학회는 24일 오후 1시부터 잠실 롯데호텔 사파이어룸에서 ‘폐암의 날’ 행사를 갖는다. 행사는 ‘여성폐암, 당당하게 이겨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환자와 담당 주치의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항암치료 부작용 관리 등 유용한 강좌들로 이뤄진다. 이번 행사는 학회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탤런트 변우민 씨가 사회를 맡는다.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사전예약과 문의는 대한폐암학회로 하면 된다.》

여성 폐암환자가 늘고 있다. 중앙암등록자료에 따르면 2001∼2005년 1만7562명이였던 여성 폐암환자는 2011∼2015년 2만8306명으로 늘었다. 전체 폐암의 30%는 비흡연 폐암으로 대부분 여성 환자였다. 여성의 폐암 발생률은 2014년 기준 10만 명당 15.3명으로 갑상샘(선)암을 제외하고는 전체 암 중 4위이지만 사망률은 1위다.


여성 폐암환자 85% 이상은 흡연 경력 무(無)


폐암은 흡연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여성 폐암환자의 85% 이상은 비흡연자다. 대한폐암학회에서는 ‘비흡연 여성 폐암’을 주제로 발생원인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2003∼2015년 폐암으로 수술을 한 여성 환자 957명을 분석한 결과 92.7%(887명)가 비흡연자였다. 10명 중 9명이 흡연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폐암이 발생한 것이다. 최은영 대한폐암학회 회장은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여성에게서 특히 비흡연 폐암환자가 많다”며 “유전적 요인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의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는 40∼50%에서 EGFR라는 종양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견되는데 서양의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에게서는 10∼15%만 발견이 된다. EGFR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으면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

여성, 발암물질에 취약해

류정선 대한폐암학회 홍보이사(인하대병원 폐암센터장)는 “비흡연 여성에서 폐암 환자가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며 “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폐암 전문가들은 ‘음식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를 비흡연 여성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어류·육류 등 모든 단백질 식품은 탈 때 다환방향족탄화수소 같은 발암물질이 발생한다. 식용유가 탈 때도 벤조피렌 같은 발암 가능 물질이 발생한다. 이들 발암물질이 섞인 연기나 그을음이 폐에 침투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승준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장(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가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폐암 전문가들의 보편적인 견해”라며 “튀김요리를 즐겨 먹는 대만·중국에도 비흡연 폐암이 많아 대만에서는 튀김 요리와 폐암 발생에 관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폐암학회 연구위원회는 전국 10개 대학병원에서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 226명과 비흡연 여성 환자 76명을 조사해 여성 폐암 원인에 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가 육체적, 심리적으로 피곤하다고 느끼는 날이 많았지만 운동량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들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요리할 때 눈이 따가울 정도로 연기가 자욱한 환경에 많이 노출됐다. 또 튀기거나 부침 요리 등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들은 가정 또는 직장에서 간접흡연에 노출된 적이 많았고 노출시기도 빨랐다. 집 안에서 흡연하는 비율도 높았다. 부모 형제 중에 폐암이 있었던 비율은 6.8%였고 주로 어머니와 여자 형제의 비율이 높았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담배의 발암물질에 취약했다. 남성에 비해 폐가 작고 노폐물을 분해시키는 능력도 약하기 때문이다. 담배 필터로 걸러지지 않은 간접흡연 연기, 즉 담배의 끝이 탈 때 나오는 연기가 더 위험하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과 대기 중 라돈 가스, 직업적 노출에 의한 석면 등의 물질도 유력한 폐암 발생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기 진단 어려운 폐암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사망률이 높다. 조기 진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폐암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다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도 감기와 비슷한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암 발생 위치에 따라 피가 섞인 가래나 흉부 통증, 쉰 목소리, 호흡곤란, 두통, 오심, 구토, 뼈의 통증과 골절 등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다른 질환과 혼동하기 쉽다. 다만 폐암 환자의 75%가 잦은 기침을 호소할 만큼 기침은 폐암의 가장 흔한 증상이다. 기침을 할 때 출혈이나 피가 섞인 가래와 같은 증상이 생겼을 때는 바로 전문의의 진찰이 필요하다.

여성 폐암은 흡연으로 생기는 남성 폐암과는 세포 형태와 발생 부위가 다르다. 남성 폐암은 기관지점막을 구성하는 세포의 변형으로 폐 중심부에서 발생하는 편평상피세포암이 많다. 반면 여성 폐암은 폐의 선세포에서 생긴 선암이다. 이는 국내 폐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개 간접흡연과 관계가 깊다. 선암은 비소세포폐암에 속하는데,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므로 조기에 발견되면 수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여성 폐암 환자, 우울 등 정서적 고통 심각


대한폐암학회는 전국 7개 대학병원, 386명의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괴로움, 불안, 우울정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환자 중 남성은 270명, 여성은 116명이었고 평균 연령은 64세였다. 환자가 겪고 있는 괴로움 정도 평가에서 전체 폐암환자의 54.4%가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고통을 의미하는 4점 이상으로 나왔다. 성별로는 여성 폐암환자가 56.1%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남성 폐암환자의 53.6%보다 다소 높은 경향을 보였다. 여성 폐암환자들은 우울, 두려움, 슬픔, 걱정과 같은 정서적 고통과 폐암에 의한 소화불량, 손발저림 등 신체적 고통을 남성 환자보다 더 심각하게 호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류 교수는 “여성 폐암환자는 폐암이 흡연자에게서 발생하는 병이라는 사회적 편견 속에 남성 환자보다 더 많은 정서적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며 “의료진, 가족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폐암환자 발생을 예방하려면 우선 간접흡연에 대한 노출을 피해야 한다. 간접흡연은 폐암 위험을 약 2배로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는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작동하는 등의 관리수칙을 지켜야 한다. 요리 시에는 오염물질이 확산될 수 있으므로 미세먼지 등에 민감한 노약자나 아이들은 방에서 문을 닫고 머무르게 하는 것이 좋다. 볶기, 구이 등 오염물질이 많이 발생되는 요리를 할 땐 뚜껑을 덮고 요리가 끝난 뒤에도 창문을 바로 닫지 말고 30cm 정도 열어서 최소 15분 이상 자연환기를 한다.

최 회장은 “조리 시 연기로 인한 폐암 위험은 1.6∼3.3배가 된다”며 “레인지 후드 같은 환기 장치를 켜고 창문을 열어놓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비흡연 여성 폐암의 원인을 여성의 생활 패턴과 주변 환경에서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며 “여성 폐암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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