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한국 블로그]“왜 촬영용, 예식용 웨딩드레스가 따로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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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 문화에 대해서 모르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많이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결혼 문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어느 날 한국인 이성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고 알려줬다. “축하한다”는 말을 한 뒤 자연스럽게 영국에서 예비신부에게 제일 많이 묻는 질문을 했다. 그것은 바로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지였다. 그 친구가 프러포즈를 아직까지 못 받았다고 한 말은 내게 너무 충격이었다. 물론 서양에서도 모든 남자가 영화처럼 완벽한 프러포즈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프러포즈 없이는 결혼 날짜를 잡지 못한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프러포즈를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결혼식 며칠 전에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국에서 프러포즈는 대체로 상징적인 행위다. 서양에서 남자는 프러포즈를 통해 상대가 결혼을 승낙할지 여부를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은 긴장과 초조의 시간이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결혼식 전까지만 프러포즈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혼 날짜를 잡고 하객에게 청첩장을 보낸다. 영국에서는 하객으로 올 손님을 사전에 파악해서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 주고 축하해 줄 친구, 지인, 동료에게 청첩장을 보낸다. 한국에서는 친하지도 않고,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청첩장을 마치 전단처럼 뿌린다. 나도 처음에 청첩장을 받았을 때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 사람이 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친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했다. 영국에서는 청첩장을 받으면 무조건 참석 여부를 통지해야 한다. 하객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0년 정도 살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결혼식이 가까워지면 웨딩 촬영을 한다. 원래 영국에는 없었는데 요새는 유행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과는 개념이 다르다. 영국에서는 예비부부가 추억의 장소를 몇 곳 찾아 데이트하는 모습으로 찍는다. 한국은 사진사가 알고 있는 배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간다. 예비부부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신부들은 왜 촬영용 웨딩드레스와 예식용 웨딩드레스가 달라야 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한 결혼 문화 중 하나는 총각파티다. 영국에서는 결혼 후에는 책임지고 아내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예비신랑 얼굴을 보기 힘들어질 테니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집 순례를 많이 한다. 물론 이제 남녀평등 시대라 처녀파티도 많이 한다. 요즘은 저가항공이 있어 파티의 도시로 알려진 프라하, 베를린이나 이비사까지 주말여행으로 많이 다녀온다.

결혼식 자체는 비슷하다. 다만 어떤 웨딩홀들은 약간 공장의 생산라인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여러 한국 결혼식을 봤더니 동화 같은 결혼식을 해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안개나 거품 같은 장치는 좀 과한 것 아닌가 싶다. 근엄해 보이는 양가 부모님, 잘 생략되는 첫 키스, 비경쟁적인 꽃다발 던지기, 잘 보지 못한 웨딩케이크 그리고 축의금 등은 아직도 낯설다.

한국 결혼식에서 ‘현금이 왕이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편하지만 인간미는 없는 편이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예비부부가 필요한 것을 적어서 친구나 가족들에게 주면 각자의 수준에 맞게 선택하여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정성도 느껴지고 결혼 생활 내내 선물해준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혼인신고 개념도 영국과 한국은 달랐다. 영국은 결혼식을 마치면 자동으로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되는데, 한국은 예식 날 여러 사람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고 그 이후 오래 함께 살아도 구청에 가서 신고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실 결혼식 당일 신혼여행을 가면서 신랑과 크게 싸워 신혼여행을 취소한 것뿐만 아니라 결혼 자체를 아예 없던 걸로 한 경우도 보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결혼기념일이 결혼식 날인지, 구청에 신고한 날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혼식에 대한 양국의 문화가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답은 없다. 예외도 많다. 두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그게 정답 아닐까. 나도 나중에 내 마음대로 할 테니.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한국#결혼#예비신부#프로포즈#청첩장#웨딩 촬영#웨딩 드레스#혼인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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