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서 규모 3.5 지진이 또… 새로운 재해 대책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부 이재민 “피해자 차별” 한밤중 항의 소동…규모 3.5 여진
지진 나흘 지나서야…대피소에 칸막이 설치 나선 정부

19일 오후 11시 45분 경북 포항시 북구 북쪽 9km 지역에서 규모 3.5의 지진이 발생했다.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진이었다. 여진 57회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규모다. 피해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이재민이 분산 수용된 대피소는 또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앞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진 발생 나흘 만인 이날 뒤늦게 사생활 보호를 위한 칸막이 천막과 개별 텐트를 설치키로 하면서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있던 이재민들은 장단기로 나뉘어 각각 근처 남산초교와 흥해공고로 옮긴 상태였다.

여진 직후인 20일 0시경 흥해공고에 있던 이재민 일부가 정부와 지자체의 차별 조치를 주장하며 짐을 싸들고 흥해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이재민 수십 명은 체육관 내부 진입을 시도했고 포항시 공무원들이 막아섰다. 한 주민은 “그나마 조금 나은 환경이라고 해서 옮겼는데 점심도 오후 5시에 나오고 구호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등 더 열악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30분가량 항의한 뒤 다시 대피소로 돌아갔다.

● 반복되는 늑장·오락가락 대응에 이재민들 분노

이번 지진은 한국 재난 대응 시스템의 민낯을 다시 드러냈다는 평가다. 인구 52만 명 대도시를 강타한 지진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허둥지둥했다. 가까이는 지난해 9·12 경주 지진, 멀게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지진 발생부터 5일간 기준과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 대피소에서 1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불안과 불편을 견뎌냈다. 문제는 이들의 장기 수용 대책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19일 행정안전부와 경북 포항시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주택 피해는 5107건. 이 중 전파(全破)가 89건, 반파가 367건에 이른다. 포항시 흥해읍 대성아파트와 원룸 건물 2곳은 철거가 불가피해 보인다. 주민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19일 오전 9시 흥해실내체육관 이재민 수백 명이 근처 남산초교와 흥해공고로 이동했다. 체육관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뒤늦게 대피소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이재민을 임시로 이주시킨 것이다. 짐을 싸서 옮기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현장 안내 인력이 부족해 이날 오전 체육관 출입구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불만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성아파트 등 장기 이재민이 될 처지의 주민들은 남산초교로 향했다. 일반 단독주택과 빌라 주민들은 흥해공고로 거처를 옮겼다. 일반 주택 주민 중에도 건물 파손이 심해 사실상 조기 귀가가 어려운 주민이 많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일부 주민은 두 대피소를 왔다 갔다 하는 불편을 겪었다.

앞서 대피소 상황도 비슷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생활 노출. 흥해실내체육관에서는 어른 1명이 지낼 정도의 공간에 최대 3명이 모여 지냈다. 몸을 뒤척이면 옆 사람 어깨와 부딪칠 정도였다. 지진 발생 나흘 만인 19일부터 개별 텐트 설치가 시작됐다. 하지만 모든 이재민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닥쳤을 때 일본은 이재민의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는 칸막이형 천막을 조기에 설치했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 때도 똑같은 문제를 겪었지만 대응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주말에는 전력 과부하로 출입구 공기청정기 2대 가운데 1대가 고장이 나 이재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온풍기 6대가 돌아가지만 오전 3, 4시경에 추위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샤워장도 부족해 상당수는 금이 간 집에 가서 샤워를 해결하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감기 같은 질병이 쉽게 퍼질 수 있는 구조다. 반려견이 함께 있는 것에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다.

● 새로운 재해 대책 필요하다

견디다 못해 대피소를 떠나는 주민도 늘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첫날 1000명 이상이었던 흥해실내체육관 이재민은 19일 오전 800명으로 줄었다. 16일부터 대피소에 있던 심모 씨(55·여)도 18일 창문이 깨지고 가재도구가 나뒹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심 씨는 “위생과 기본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대피소보다 여진이 걱정되지만 집이 낫다. 옆에 누워 생활하던 이웃도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하며 귀가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이재민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소 2년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장기 수용 대책으로 보기엔 턱없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 160채를 보증금 없이 기존 임대료의 50%에 6개월 조건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임대기간 연장을 검토한다고 덧붙였지만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날 이주 신청 현장에서 주민들은 “아파트 재건축이 2, 3년이 걸린다. 최소 2년 임대 거주는 보장해 달라.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신청했다가 6개월 후에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시 관계자는 “도심 내 대규모 지진 피해 사례가 없어 장기 이주 지원 마련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정부에 추가 대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전사고에 대비한 출입 통제도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북구 장성동 환여동 등 필로티 구조 피해가 있는 원룸 건물은 상당수가 균열이 생겼지만 별도의 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 북구 학산동의 서모 씨(41)는 “필로티에 커다란 금이 가 있어 집 안에 들어갈 때마다 매우 불안한데 아직까지 안전 진단 결과나 행동 요령에 대해 전달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지진은 태풍과 장마처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로 봐야 한다. 이에 맞는 이재민 수용 방안 등 새로운 차원의 재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포항=장영훈기자 jang@donga.com/포항=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포항#지진#대피소#칸막이#재난#대응#시스템#지방자치#경주지진#세월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20일 0시경 경북 포항시 흥해공고 대피소에 머물던 이재민들이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차별 조치를 주장하며 기존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해 공무원들에게 항의했다. 포항=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20일 0시경 경북 포항시 흥해공고 대피소에 머물던 이재민들이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차별 조치를 주장하며 기존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해 공무원들에게 항의했다. 포항=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20일 0시경 경북 포항시 흥해공고 대피소에 머물던 이재민들이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차별 조치를 주장하며 기존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해 공무원들에게 항의했다. 포항=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20일 0시경 경북 포항시 흥해공고 대피소에 머물던 이재민들이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차별 조치를 주장하며 기존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해 공무원들에게 항의했다. 포항=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포항 이재민들 “사생활 보호 좀”… 칸막이 대피소로 18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남산초등학교 대피소(위쪽 사진).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 기존 대피소에 불만을 표시해 포항시 북구
 삼흥로 기쁨의 교회에 칸막이가 있는 대피소(아래쪽 사진)가 마련됐다. 지진 발생 나흘 만인 19일 일부 이재민들이 이곳으로 
옮겼다. ‘칸막이 대피소’가 마련되기 전 일부 이재민은 “위생과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대피소보다 차라리 위험한 집이 낫다”며 
귀가하기도 했다. 포항=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포항 이재민들 “사생활 보호 좀”… 칸막이 대피소로 18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남산초등학교 대피소(위쪽 사진).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 기존 대피소에 불만을 표시해 포항시 북구 삼흥로 기쁨의 교회에 칸막이가 있는 대피소(아래쪽 사진)가 마련됐다. 지진 발생 나흘 만인 19일 일부 이재민들이 이곳으로 옮겼다. ‘칸막이 대피소’가 마련되기 전 일부 이재민은 “위생과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대피소보다 차라리 위험한 집이 낫다”며 귀가하기도 했다. 포항=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