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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청년은 왜 이민 가방을 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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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청년은 왜 이민 가방을 쌌을까

송화선 기자 입력 2017-11-19 10:40수정 2017-11-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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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편 서른 살, 아내 스물여덟 살인 부부가 찾아와 상담을 하고 갔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출국했다 영주권을 받는 사람이 많다던데 어느 나라로 가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까요’라고 묻더군요. 내년이면 남편 나이가 만 서른 살로 워킹홀리데이 신청을 못 하게 되니 마음이 급한 듯 보였습니다.”

박한진 워킹홀리데이협회 팀장의 얘기다. 그는 “요즘 이렇게 부부가 같이 와서 워킹홀리데이 상담을 하는 분이 적잖다”고 밝혔다. 이들의 목표는 워킹홀리데이 취지인 ‘단기간 외국 경험’보다 ‘탈(脫)한국, 해외 정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한 달 살이’ 관련 카페를 운영하는 A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 달 살이’는 특정 지역에서 한 달 정도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 방식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2010년대 초·중반 제주를 중심으로 유행이 시작됐고, 최근엔 지역이 해외로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A씨는 자녀와 함께 수차례 세계 각국으로 ‘한 달 살이’를 다녀온 인물. 현지 장바구니 물가와 치안, 자녀 교육 여건 등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려운 정보를 카페에 소개한다. A씨에 따르면 과거엔 그를 따라 ‘한 달 살이’를 경험하려는 이가 회원으로 많이 가입했다. 그런데 최근엔 ‘한 달 살이를 예행연습 삼아 궁극적으로는 현지에 정착하려 한다’는 뜻을 밝히는 회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을 떠나는 이도 급증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한국 국적을 포기(상실 또는 이탈)한 사람은 22만3611명에 이른다. 이 중 지난해 국적 상실자가 3만5257명으로 전년(1만6595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6939명), 40대(6718명), 30대(6100명) 순이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심 세대가 가장 많이 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국적 상실은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국적을 잃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국적 이탈은 출생 시 복수국적을 갖게 된 사람이 특정 시점에 한국 국적 대신 외국 국적을 택한 경우를 말한다. 지난 10년간 국적 상실자는 미국 국적(9만4908명)을 가장 많이 취득했고 일본(5만8870명), 캐나다(3만2732명)가 뒤를 이었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하려면 최소 몇 년 이상 자국에 정주하며 소득활동을 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했을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적 상실자 급증이 일회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3~4년 새 젊은 층의 ‘탈한국’ 분위기가 강해진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탠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무렵부터 ‘지옥 같은 한국’이란 뜻의 ‘헬조선’(hell+朝鮮)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2015년에는 한국 탈출을 꿈꾸는 20대 후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시기는 워킹홀리데이 열기가 다시 높아진 때와도 맞물린다. 워킹홀리데이는 만 18~30세 젊은이가 해외에 약 1년간 체류하면서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통해 현지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허가하는 비자다. 우리나라는 현재 호주, 캐나다, 일본, 아일랜드 등 20개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다. 영국은 우리나라 청년이 최장 2년간 머물 수 있는 청년교류제도(YMS) 협정 체결국이다. 보통은 영국까지 21개국을 워킹홀리데이 체결국이라고 부른다.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역시 영국을 포함해 관련 통계를 낸다. 이에 따르면 2009년 5만2968명으로 정점을 찍은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수는 이후 다소 감소했다 2014년(3만7373명)부터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3만9950명을 넘어 올해는 4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계자들은 이를 견인하는 집단으로 ‘20대 후반’을 꼽는다.

워킹홀리데이, 한 달 살이…다양한 ‘탈한국’

박한진 팀장은 “1995년 우리나라가 호주와 처음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을 때만 해도 워킹홀리데이는 20대 초반 젊은이의 사회 경험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나이 제한 외 별도의 제한이 없어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쉽고 △공부와 직업 활동을 병행할 수 있어 학생 비자나 취업 비자에 비해 활용 폭이 큰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해외에 진출하려는 직장인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류지연 한국국제교류원 차장도 “최근에는 결혼하고 직장도 있는 20대 중·후반 젊은이가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는 사례가 꽤 많다. 캐나다 일부 주에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비자가 만료되기 전 취업해 국적까지 취득한 사례가 있다. 이런 방법을 문의하는 이도 적잖다”고 밝혔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가 할 수 있는 일로 웨이터, 간호, 과일따기 등을 소개한 호주 유스호스텔 협회 홈페이지(왼쪽). 11월 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박람회에서 해외취업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온라인 홈페이지 캡처,동아일보 박경모 기자]
올여름 호주 정부가 워킹홀리데이 신청 가능 연령을 현행 만 30세에서 만 3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는 한동안 여러 직장인 커뮤니티가 들썩이기도 했다. 이 ‘난리’는 주한 호주대사관이 페이스북에 ‘당장 비자 제한이 풀리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서야 잠잠해졌다. 한 직장인은 “당시 대학 동기들 카카오톡 단체방에 한 친구가 ‘우리도 ‘워홀’(워킹홀리데이) 갈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한바탕 떠들썩해진 적이 있다. ‘어릴 때는 뭘 몰라서 기회를 놓쳤는데 이제라도 인생을 걸어보는 게 낫지 않나’라는 얘기가 많았다. 얼마 뒤 호주대사관이 그 내용을 부인하자 다른 친구가 ‘우리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자’는 글을 올린 게 기억난다. 뭔가 씁쓸하고 자조적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한 27세 김은미 씨는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지만 하루하루 지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대학생 때 캐나다에서 어학연수하면서 느끼던 삶의 여유가 그리웠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라고 밝혔다.

아예 취업길이 막힌 청춘도 ‘탈한국’을 꿈꾼다. 6월 인터넷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구직자 478명을 대상으로 해외 취업 의향이 있는지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8.5%가 ‘그렇다’고 답했다.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는 ‘국내 취업난이 너무 심각해서’(46.9%)가 가장 많았다.

2년 전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출국한 B씨는 저임금에 지쳐 외국으로 눈을 돌린 경우다. 지방대를 졸업한 그는 “한 중소기업에서 월급으로 100만 원을 제시했다. 고시원비가 40만 원 하는 서울에서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금액으로 느껴졌다. 주위에 물어보니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 요즘 200만 원 받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하더라. 이렇게 취업하느니 해외 경험이라도 쌓아보자는 생각으로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그런데 여기 오니 한 달에 20일만 일해도 150만 원 이상 받는다. 사장이 내게 정식으로 취직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면서 월급으로 200만 원 넘는 금액을 제안했다. 새삼 ‘아, 한국이 정말 살기 힘든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이 정규직 임금인상률을 넘어서는 추세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 파트타임 노동자의 시급은 지난해 1000엔(약 9790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은 2018년 최저시급이 7530원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보며 일본어를 익힌 청년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행을 꿈꾸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한국 인재를 선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한 대학생은 “현지에 한국인이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일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일본어만 유창하게 한다면 정규직 취업을 제안받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의외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도 없는 듯했다”고 전했다. 단, 일본어를 잘하는 게 기본 전제라고 한다. 최근 일본은 ‘고도인재’로 분류되면 최단 1년 만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외국인 인재에게 문호를 활짝 여는 분위기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 국적 상실자 가운데 일본 국적 취득자는 지난해 1만5216명으로 2015년 499명에 비해 1만4717명 증가했다(그림 참조). 이민정책연구원 관계자는 “2007년 8000명에서 감소 추세였는데, 지난해 갑자기 일본 국적 취득자가 늘어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띄는 결과인 건 분명하다”고 밝혔다.

“한국 밖에는 길이 있을까”

요즘 탈한국을 꿈꾸는 이들 사이에서 일본과 더불어 인기가 급상승 중인 나라는 캐나다다. ‘닉쑤의 Hello, Canada!’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닉쑤’는 이들 사이에서 ‘롤모델’로 통한다. 2008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처음 입국한 그는 이듬해 비자 만료 후 관광비자로 다시 캐나다에 들어갔고 취업비자, 영주권을 거쳐 지난해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가 그처럼 ‘워킹홀리데이로 시작해 시민권까지’ 이뤄내는 입지전적 성공담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국인에게 점점 더 국경 빗장을 걸고 있는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2020년까지 이민자 10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점도 희망을 높이는 대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서 5.9점으로 조사 대상 31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런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은 한국 밖에서 희망을 찾는다.

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청년은 많다.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민영 씨는 지난해 다른 청년들과 함께 쓴 책 ‘헬조선 인 앤 아웃’에서 한국 젊은이의 특징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것’을 꼽았다. 이씨에 따르면 많은 청년이 호주,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 일해 돈을 번 뒤 인도,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장기간 여행하는 식으로 ‘귀국’을 피한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인터뷰한 한 청년은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집에 가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이 책의 부제는 ‘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서성이는 사람, 한국 청년 글로벌 이동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다.

실제로 우리나라 워킹홀리데이 체결국이 많은 점을 활용해 계속 나라를 옮겨 다니며 워킹홀리데이만 하는 청년도 적잖다고 한다. 박한진 팀장은 “4개국을 다녀오고 다섯 번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준비하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이런 선택을 하는 배경에는 한국 내 삶에 대한 공포 또는 거부감이 있다.

지난해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펴낸 ‘노오력의 배신’에는 ‘1997년의 경제위기와 그 이후의 구조조정은 사람들을 다시 생존의 문제로 돌아서게 했다. 탈락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보며 이 사회에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 탈락은 곧 몰락을 의미했다. 자아실현은 사치가 되었다. 대신 안정적인 삶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생존은 곧 안정을 의미했고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 같은 직업이 선호되었다. 다수의 청년들은 안정을 찾아 ‘공시’(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청년들은 ‘안정을 위한 무한 경쟁’을 거부한 채 해외를 떠도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앞에 놓인 것이 ‘한국에서보다 행복한 미래’일지는 불분명하다. 일본에서 일하다 일본인과 결혼한 뒤 최근 귀화한 한 여성은 “일본 국적을 받겠다고 했을 때 한국 친구들과 가족이 다 ‘잘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드니, 너라도 거기서 행복하게 지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에서 사는 게 과연 행복하기만 한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행동을 결례로 여긴다.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식습관에 아무 말 않던 남편이 최근 “아이가 당신을 따라 하면 나중에 학교에서 놀림받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그 습관을 고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이들

최근 호주가 외국인 숙련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한 임시 취업비자(457비자)를 폐지하고, 아일랜드가 이민 신청을 받아주는 소득액 기준을 3만 유로(약 3910만 원)에서 6만 유로(약 7820만 원)로 올리는 등 세계 각국이 ‘이민자의 질’을 높이겠다고 나서는 것도 ‘탈한국’ 희망자에게는 좋지 않은 뉴스다. ‘이민자의 천국’으로 통하는 뉴질랜드도 올봄부터 연봉이 4만8859뉴질랜드달러(약 37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하위 기술직의 비자 기한을 3년으로 제한했다. 그 대신 연소득 7만3000뉴질랜드달러(약 5533만 원)를 넘는 외국인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영주권 신청을 받아준다. 이민 문호를 확대한 캐나다 역시 지난해 영주권 신청자의 어학 실력과 기술 수준을 한결 까다롭게 심사하는 새로운 이민 정책을 발표했다.

젊은이가 많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위키 서비스 ‘디시위키’의 ‘탈조선’ 항목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탈조선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떠밀려 한국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해외에서라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국적 포기자 급증 현실 앞에서 되돌아볼 일이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1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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