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국정원 일탈은 대통령의 잘못… 다신 정권 노예 되지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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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국정원 특수활동비 일파만파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 인터뷰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정치권이 정보기관을 그만 좀 괴롭히고 국가안보를 위해 일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랜 국정원 재직 경험을 토대로 국정원 개혁 방안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1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정치권이 정보기관을 그만 좀 괴롭히고 국가안보를 위해 일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랜 국정원 재직 경험을 토대로 국정원 개혁 방안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81·현 우당기념관장)은 17일 최근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해 “‘다시는 정권의 노예가 되지 말자, 누구의 사물화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마지막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정원의 일탈은 정보 사용자(대통령)의 잘못”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에 공채 1기로 들어갔다. 1981년 전두환 정부 시절 중정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1999년 김대중(DJ) 정부 시절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뀔 때 기조실장과 원장으로서 개혁 작업에 관여했다. 검찰 수사와 조직 개편, 명칭 변경 등 큰 변화를 앞둔 시점에 이 전 원장을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한 정부의 국정원장 2명이 동시에 구속된 건 처음이다.

“정보 사용자인 대통령의 문제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내가 모사드의 기관장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국가 정보가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지 느끼고 있어야 한다. 정보기관이 실제 해야 되는 일이 아닌, 자신(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정보를 요구하고 사유화하려니까 타락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만 괴롭히고 국정원이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정보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도 된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어떻게 보고 있나.

“국정원의 본래 목적과 다르게 댓글을 다는 등 국내 심리전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국민이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국민을 깔보는 것이다.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하면 방어를 댓글로 하지 말고 ‘북한이 대남공작을 하니까 경계하자’고 하면 된다. 그러면 댓글을 단 사람이 북한 사람인지 국민들은 다 안다. 댓글로 방어한다는 건 일종의 변명이다.”

―검찰 수사가 국정원 개혁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일종의 적폐청산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번에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에서 문성근 씨에 대해 왜 합성했냐고 하니까 상사의 지시로 부득이 했고 후회한다고 하더라. 이제는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본연의 임무와 다르고 법에 저촉이 된다면 거부해야 하고, 안 되면 사표를 내야 한다. 이번에 그런 것이 체계화됐으면 좋겠다. 초법적인 것은 할 수 없다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짐바브웨에 접근하려는데 2인자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다. ‘구치’를 좋아해서 ‘구치 그레이스’라고 불린다. 접근을 하려면 뇌물로 구치를 사줘야 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사용처를 적나. 이때 접촉하면서 쓰는 돈이 특수활동비다. 특수활동비를 없애면 정보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어디에다 썼냐는 것이다. 문고리 3인방(박근혜 정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용돈으로 줬다면 그건 안 된다.”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의 특수활동비를 일부 주는 건 괜찮나.

“대통령이 그걸 어떤 데 쓴다고 분명히 해줘야 한다. 내가 재임했을 때도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한국 노트북이 좋다고 요구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사 드렸다. 어떻게 컴퓨터를 사줬다고 예산 비목에 넣을 수 있겠나. 특수활동비는 고도의 양심적인 게임이지 이것을 기록할 수는 없다.”

―DJ 정부 시절에는 어땠나.

“이강래 전 의원이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다. 딱 보니까 특수활동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비목이 많았다. 대통령에게 ‘활동에 필요하면 쓰시라’고 하니까 ‘우리는 합목적 외에는 쓰지 말자’고 딱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끊어버렸다.”


―국내 정치 개입 문제가 왜 계속 논란이 되나.

“나 같은 사람이 원장으로 가는 게 문제다. 정치인 출신은 안 된다. 대통령에게 보고가 끝나고 가끔 ‘그건 요새 어떻게 돼가’라고 얘기하면 본업무가 아닌 잡담을 하게 된다. 프로들이 하면 그런 잡담도 없을 것이다. 국정원장은 정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수양이 돼 있느냐가 중요하다. 원세훈 전 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하고 구청장 하던 사람이다. 그때 완전히 국정원이 망가졌다.”

―국내 정치 개입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문제는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 국정원법은 미국 국가정보국(ODNI)과 같은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국정원법 위반을 일반 공무원의 정치 개입보다 가중 처벌하도록 고치면 된다. 국정원에는 충실한 일꾼이 90%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집단을 무너뜨리는 것은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민간인 위주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나.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이 활동을 해야 한다. 교수 등 너무 외부에서 투입하면 국가의 정보기관인데, 공개하지 못할 많은 얘기가 노출이 된다. 영국은 상원을 중심으로 사문(査問)위원회를 만들어서 개혁을 한다.”

―국정원 개혁의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나.

“댓글부대니 심리전이니 그런 건 혹이다. 내가 (국정원장 시절)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면 원훈을 ‘정보는 국력’이라고 했겠나. 정보는 개인의 것이 아니니 사유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가의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국력 신장을 하는데 대외적으로 뻗어 나가자고 정문에 광개토대왕비(이명박 정부에서 철거)를 세웠고, 이제 사람 뒤를 캐는 데 열을 올릴 게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게 우선이라는 개념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제일 애쓴 김구와 신채호 두 사람의 초상화를 강당에 붙였다. 그런데 뒤에 둘 다 사라졌다.”

―지금 국내 파트를 사실상 없애고 있다.

“국내 파트 가운데 대공수사는 있어야 한다. 또 강화해야 할 것이 사이버 분야다. 북한의 해킹을 방어할 수 있게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이 간첩을 침투시켜서 이지스함 관련 정보를 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나. 북한의 해킹 능력이 엄청나게 발달됐고 해커가 침투하는 게 더 빠르다. 국방부와 국정원이 (사이버 부대를) 댓글부대로 악용해 버린 것은 국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일종의 반역이다.”

―국회의 국정원 견제는 어떤가.

“국회 정보위원회는 보안을 지켜줘야 한다. 정보위에 보고하면 바로 공개가 된다. 과거 김정일이 아팠다가 이제는 칫솔을 쓸 정도의 건강은 회복됐다고 보고했는데 정보위에서 발표를 해버렸다. 김정일이 칫솔질을 하는 것을 알 정도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중 하나가 보고했을 거 아닌가. 그러면 요원을 죽이는 일이다. 독일 의회에 가면 정보위가 지하실이 두꺼운 벽으로 돼 있어서 감청이 안 된다.”

―대통령이 국정원장 독대를 안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만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안 만나는 게 최고다’라고 했는데 국가 안보엔 관심이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만나서 정치 얘기를 안 하고 국가 안보에 필요한 부분만 보고를 하면 된다. 국정원으로부터 매일 보고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3NO 정책’을 갑자기 터뜨리지 말고 국정원으로부터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고를 받아야 한다. DJ 정부 때는 매일 보고를 했고 1주일에 한 번씩 대통령을 만났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정보 사용자가 잘못해서 국정원이 모든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국정원의 잘못이라기보다 정보 사용자의 잘못이다. ‘다시는 정권의 노예가 되지 말자’, ‘누구의 사물화가 되지 말자’,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켜야 한다. 서훈 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국정원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 국정원에 남아 운영한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그만두면 나도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정권의 시녀가 된다. 국정원장은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파수꾼이다.”

정원수 needjung@donga.com·송찬욱 기자
#이종찬#국정원#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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