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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민우] ‘신화의 땅’ 올림피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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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민우] ‘신화의 땅’ 올림피아로 가는 길

올림피아=박민우특파원 입력 2017-10-23 22:42수정 2017-10-2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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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특파원
그리스의 10월 햇살은 아직 뜨거웠다. 코린토스만의 쪽빛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경계가 모나리자의 입술처럼 묘했다. 길을 따라 하늘로 솟아오른 측백나무들이 늘어섰지만 멀리 산등성이에는 듬성듬성 낮게 자란 올리브 나무가 헐벗은 땅을 가리고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밝혀줄 성화를 보기 위해 22일 아테네에서 필로폰네소스 반도의 심장부인 올림피아로 향했다. 아테네 서쪽으로 반도를 연결하는 코린토스 지협을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북부 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항구도시 파트라스를 지나는 여정을 선택한 덕분에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와 그리스 북부 산맥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도 오래도록 보고 있자니 밋밋하게 변했다. 필로폰네소스 반도 둘레를 거의 반 바퀴나 돌고 나서야 올림피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로 가는 최단거리는 내륙을 가로지르는 것이지만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히려 더 길다. 필로폰네소스 반도 중앙부에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필로폰네소스의 주도 트리폴리스를 지나 나타나는 지방도로는 마주 오는 차량 2대가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고 낙후됐다. 헤라클레스의 근육처럼 굴곡진 산길은 대관령 옛길보다 험해 현지인들도 기피할 정도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화의 땅 올림피아로 가는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달팠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걸어서 넘어야 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인들은 올림피아에 도착하기 위해 최소 일주일은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출발하는 선수들은 바다를 건너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이런 제약 속에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4년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올림피아로 몰려들었다.

무엇이 고대 그리스인들을 필로폰네소스의 깊은 산골로 불러 모았을까. 헤르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 기록된 일화를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과거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인을 심문하며 “어떤 상을 타려고 경기를 하느냐”고 묻자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을 타기 위해 경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페르시아 장군 트리탄타이크메스가 “왕이시여, 어찌하여 돈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경기를 하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싸우자고 우리를 끌고 왔습니까”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스포츠는 순수한 열정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도 최고의 레슬링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몇 번이나 올림피아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과거 올림피아로 가는 길은 고달프기도 했지만 또 평화로웠다.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로 불리는 올림픽 휴전 덕분이었다. 에케케이리아는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라는 뜻이다. 도시국가간 전쟁이 끝이질 않았던 기원전 776넌 엘리스의 이피토스 왕, 피사의 클레오스테네스 왕,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왕은 델피의 유명한 예언자의 조언에 따라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을 열기로 하고 일시적인 휴전을 선포했다. 휴전 기한은 올림피아로 가는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약 3개월이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올림픽 개최국은 1993년 이후 유엔 총회에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한다. 다음달 13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평창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면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부터 폐막 일주일 후까지 휴전이 성사된다. 북한의 핵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에케케이리아 정신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4일부터 타오를 성화를 바라보며 전 세계인들이 평창으로 오는 길이 평화롭기를 기원할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현장에 도착하자 24일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채화식에서 ‘비 주의보’가 내려졌다. 그리스 현지 기상당국은 채화식 당일 강수확률을 80%로 예보했다. 오목거울에 태양 빛을 모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채화는 구름이 많거나 비가 오면 진행이 어렵다. 실제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성화 채화는 날씨 때문에 태양 빛을 모아 점화하지 못했다. 23일 열린 채화 리허설에서도 해가 구름에 가려져 3번의 시도 끝에 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5분 뒤에는 폭우가 쏟아져 관계자들의 옷이 비에 홀딱 젖기도 했다.

하지만 평창을 향한 성화의 정신은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그리스 올림픽위원회는 22일 미리 예비 채화를 해뒀다. 채화 당일 비가 내릴 경우 이 예비 채화 불꽃을 활용해 ‘올림픽 아카데미’에 마련된 실내에서 채화식이 약식으로 진행된다.

채화된 성화의 첫 봉송 주자는 그리스 선수가 맡는 관례에 따라 그리스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가 맡는다. 두 번째 성화 봉송은 한국인 첫 봉송 주자이기도 한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 박지성이 한다. 이 성화는 그리스 현지에서 7일간 봉송행사 후 다음달 1일 국내에 들어와 101일 동안 전국을 누빈 뒤 평창 성화대에서 불타오른다.

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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