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우린 뉴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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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 뉴욕에 왔다. 그가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4시간 전 급히 찾은 곳이 있었다. 맨해튼 동쪽 끝 루스벨트아일랜드에 일주일 전 문을 연 코넬대 공대 ‘코넬텍’ 캠퍼스.

그는 뉴욕시와 대학, 기업이 힘을 모아 만든 이곳에서 한국 경제를 벌떡 일으켜 세울 ‘혁신 성장’의 아이디어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몸소 현장을 찾아 혁신 성장의 중요성을 소득주도 성장에 매몰된 한국 사회에 호소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머릿속과 책상 위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러 있고, 혁신 성장은 지난 정부부터 구호만 있고 성과는 없었던 밀린 숙제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그걸 해내야 하는 그를 두고 ‘설거지 부총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죽 답답했으면 뉴욕의 작은 섬까지 찾아왔을까.

소득주도 성장의 성패는 국민의 지갑을 얼마나 두둑하게 채워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저 그런 일자리가 아니라 넉넉한 소득을 안겨 주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많이 필요하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과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놨지만 정규직 전환, 공공일자리 증원, 사회적 기업 지원 등 정부가 예산과 입김을 불어넣어 끌고 가는 사업이 많다.

김 부총리가 총대를 메야 할 혁신 성장은 민간 스스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을 충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뱀이 허물을 벗듯 구체제와 결별하지 않으면 혁신의 에너지는 모아지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도시 경쟁력을 보유한 뉴욕조차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게 혁신 성장이다.

코넬텍 개소식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우리는 기술 경쟁에서 지고 있었다. 우리가 경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이 시작한 코넬텍 사업을 마무리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이날 “850만 뉴요커를 대신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전 시장의 결단을 칭찬했다.

뉴욕의 지도자들은 혁신 성장을 위해 맨해튼의 금싸라기 땅을 뚝 떼어 학교부터 지었다. 실리콘밸리가 스탠퍼드대의 기술과 지식을 먹고 성장한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우수한 공대에서 나온 기술과 아이디어로 학생과 교수가 창업에 도전하고, 월가의 막대한 자본이 이들의 성장을 돕는 선순환 생태계가 뉴욕이 꿈꾸는 혁신 성장의 미래다. 학교에 대한 투자가 끝나는 시점은 2043년. 30년 후를 내다본 중장기 투자다. 뉴욕은 1970년대 주력인 의류 산업이 침체됐을 때도 이런 식으로 금융업을 일으켜 세계 최고가 됐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수도권 규제에 발이 묶여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판교에 제대로 된 공대 하나 세우지 못했다. 비슷한 정책을 이름만 바꿔 ‘표지갈이’ 하면서도 전임 정권이 한 일은 ‘적폐’라며 없었던 일로 되돌린다. 30년 투자는커녕 임기에 맞춰 5년 대책, 심지어 3년 대책을 남발한다. 지역 정치인들은 “중앙정부의 책임”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업고 다닐, 일자리 만드는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코넬텍은 뉴욕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뉴욕이 실리콘밸리부터 서울까지 전 세계의 기술 센터들과 경쟁할 수 있게 도울 겁니다.”(블룸버그 전 시장, 코넬텍 개소식 연설에서)

코넬텍 개소식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우린 뉴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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