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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사고로 한쪽 시력 잃고도 현장 돌아온 경찰특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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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사고로 한쪽 시력 잃고도 현장 돌아온 경찰특공대

뉴스1입력 2017-10-20 09:04수정 2017-10-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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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추락 사고 제주경찰특공대 김석철 팀장
사고 트라우마·오른쪽 눈 실명 극복 현장 복귀
제주경찰특공대 전술1팀 김석철 팀장(39·경위)은 어릴적부터 강한 남자를 동경했다.

10대에는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했다.철없던 시절 말썽도 피워 경찰인 아버지를 경찰서에서 만난 적도 있다.

특전사로 복무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 경찰이 되고 싶어 고향인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2005년 10월 경찰 중에서도 강한 체력과 전투력을 자랑하는 경찰특공대에 합격했다.

경찰이라는 꿈을 이루고 아내를 만나 첫째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따스한 봄 햇살보다는 제법 찬바람이 불던 2013년 3월4일.

김 팀장(당시 경사)은 얼마 안있으면 세상에 나올 둘째 아들을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암 투병 중인 홀로 사는 어머니 걱정에 마음을 졸였다.

그날은 제주경찰특공대 훈련장 15m 건물에서 레펠을 타고 하강하는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김 팀장은 팀원들이 훈련하기 전 안전성 등을 점검하려 먼저 레펠을 탔다.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훈련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 정도 타고 내려왔을때쯤 순식간에 몸이 휘청하더니 김 팀장은 7~8m로 아래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김 팀장이 눈을 뜬 것은 사고 후 4~5일이 지난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머리뼈가 산산조각난 중상이었다.

‘개방성 두개골 골절’ ‘개방성 머리뼈 바닥 골절’ ‘시각피질의 장애’ ‘외상성 시신경 병증’ 등 진단서에 쓰인 어려운 이름의 병명만 10여 개에 달했다.

2015년까지 2년간 무려 8번의 수술을 받았다.

김 팀장이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첫 수술을 하기 전 의료진은 아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할만큼 살아난 게 기적이었다.

생명은 건졌지만 떨어질 때 충격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경찰 그것도 평생을 특공대원으로 살아온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그릇에 담는데 원근감이 떨어져 정확하게 옮기지 못하고 쏟았어요. 그때 심상치 않구나라고 느꼈습니다”라고 김 팀장이 말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경찰의 꿈을 품게 해준 돌아가신 아버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머니, 만삭인 아내와 아들들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사고가 나고 한달 뒤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병상에 누워있던 김 팀장은 아내의 출산을 보지도 못했다.

아들이 태어난 뒤에도 사진과 영상 통화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들을 직접 만나 만져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김 팀장 안에 삶의 의지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고 6개월만인 그해 9월 내근직으로 복귀했다. 현장이 좋아 특공대원이 된 그에게 책상에 앉아있는 일은 낯설었다.

김 팀장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재활훈련과 운동을 시작했어요. 정말 죽을 각오로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의 곁에는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격려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두 아들이 있었다.

김 팀장의 빠른 회복을 지켜본 의사들은 원래 체력이 강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놀라워했다.

사고가 나고 1년6개월이 지난 2014년 12월. 김 팀장은 경위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 다른 동료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시험을 거쳐 얻어낸 결과였다.

경찰은 논의 끝에 김 팀장의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투병 중인 어머니는 김 팀장이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난 뒤 얼마 안 있어 숨을 거뒀다.

김 팀장은 “현장에 복귀하고 첫 레펠 훈련을 하게 됐는데 사고 기억이 떠올라 1시간을 망설였어요. 지금은 다 이겨내서 예전처럼 탈 수 있게 됐어요”라며 “예전에는 멋진 훈련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전한 훈련이 최고의 훈련입니다”라고 웃었다.

김 팀장은 과거 고통스러운 기억을 풀어놓으면서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무대포에 외골수가 강한 남자라고 믿었던 그의 성격과 마음가짐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달라졌다.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감사한 일도 많아졌다. 인터뷰 말미에는 부족한 자신에게 팀장을 맡겨준 특공대장과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믿고 따라와주는 대원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고 똑같은 경찰로 대해달라며 특공대를 떠난다면 경찰 출신 아버지처럼 수사와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잖아요.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깨닫게 됐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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