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중단사태… 받는 쪽도 “눈치보여 꺼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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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사건후 기부 찬바람

“제2의 이영학이란 소릴 들을까 걱정돼요.”

희귀난치성 질환 ‘리씨증후군’을 앓는 6세 아들을 둔 최모 씨(48·여)는 “후원자를 찾아봐 주겠다”는 대형병원 사회사업팀 직원 말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희귀병(거대백악종) 치료비를 핑계로 후원금을 모은 살인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자신이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 직원은 “이영학 사건으로 희귀난치병 환자에 대한 후원도 줄어드는 데다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19일 말했다.

결손아동 돕기 후원금 128억 원을 호화생활에 탕진한 ‘새희망씨앗’ 법인 사건에 이어 ‘어금니 아빠’ 사건까지 터지자 비영리단체들은 기부에 대한 세간의 불신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한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마저 도움 받는 일에 불편해한다.

○ 정기 후원자 이탈 막으려 진땀

선량한 후원자의 마음을 짓밟는 사건들에 결손아동이나 위기가정을 돕는 비영리단체들은 힘이 빠진다. 결손아동 돕기 비영리단체에서 5년째 일하는 김모 씨(38·여)는 “오늘(19일) 오전에만 후원을 그만하겠다는 전화가 10통이나 왔다. 새 후원자가 늘어나도 모자란데 해지 요청만 쇄도하니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직원 오모 씨(33·여)는 “시민의 냉대가 더 심해졌다. 우리도 자신감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이들 단체는 정기 후원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자구책을 내고 있다. 총 기부금 사용 내용과 일대일 후원금 사용서를 e메일이나 우편으로 서둘러 발송했다. 후원자들에게 일제히 휴대전화 문자를 발송하기도 한다. 문자에는 후원금 사용처를 볼 수 있는 홈페이지 주소가 연결돼 있다. 비영리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연말이 돼서야 결산보고서 형식으로 안내해 왔지만 지금은 손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뭐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단체보다 병원과 환우회의 타격이 크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신현민 회장은 “지난해만큼 연말 기부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기획재정부 선정 단체인데도 질병만 앞세워 모금하는 무자격 단체로 오인될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사회복지팀 사무실을 직접 찾아와 ‘내 돈으로 치료받은 환자 연락처를 알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 후원금의 약 15%는 홍보·운영비로

기부자가 낸 후원금이 온전히 수혜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현행법상 비영리단체는 후원금 15%가량을 마케팅 비용, 단체 운영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영리단체를 통해 후원한다면 정기 소식지나 후원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세서가 제때 오지 않거나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단체라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비영리단체 측은 전화로 후원 요청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일정 기간 약정해 소액 후원금을 자동이체로 납부할 때 예금주가 기관명과 다르거나 주식회사라면 가짜 단체일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위기가정 아동을 돕는 A단체 직원은 “후원금으로 어떤 사업을 했는지 홈페이지에서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새 사업 내용이 없다면 의심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어금니아빠#이영학#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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