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백두혈통’의 문지기 최룡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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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7차 대회 경축 군중대회 주석단에서 김정은이 최룡해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달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최룡해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로 부상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난해 5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7차 대회 경축 군중대회 주석단에서 김정은이 최룡해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달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최룡해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로 부상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2013년 봄 어느 날. 자정 무렵 평양 서성거리 한 도로에서 젊은 남성 두 명이 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한 명은 페달을 밟고, 한 명은 짐받이에 앉았다.

갑자기 뒤에서 군용 승합차가 이들을 덮쳤다.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진 둘을 그대로 둔 채 차량은 도망갔다. 이런 뺑소니는 북한에서 흔한 일이다. 사고를 당한 남성들은 뒤늦게 근처 모란봉구역의 평양 제1인민병원 구급실(응급실)에 실려 갔다.

당직 의사들이 보니 출혈이 심해 가망이 없었다. 의식 잃은 이들은 사체실로 옮겨졌다. 신분 확인을 위해 의사는 이들의 지갑 속 증명서를 꺼냈다.

“최현철. 1984년생. 미혼. 평양시당 조직부 책임부원…. 이런, 당 간부네. 시당에 알리세요.”

40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봉화진료소 구급차가 병원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사체실에서 현철만 꺼내 급히 사라졌다.

평양에서 김씨 패밀리 전용 병원이자 극소수 특권층 간부들만 치료하는 봉화진료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평양시 하급 간부인 부원이 감히 문턱에도 못 갈 곳이다.

깜짝 놀란 의사는 보통강구역당 조직부원으로 확인된, 페달을 밟았던 남성을 병상에 옮겨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하지만 현철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던 그 남성은 끝내 숨을 거뒀다. 그게 일반 병원의 한계였다.


한편 봉화진료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새벽 4시에 김정은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는 실려 온 청년을 가리키며 “최씨 가문의 대가 끊기면 안 된다. 무조건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최현철은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의 외아들이자, 최현 전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유일한 손자였다. 현철에겐 복실이란 이름의 누나만 하나 있다. 복실은 날 때부터 얼굴에 손바닥만 한 기미가 있어 얼굴 반쪽을 늘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닌다.

현철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 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는 지방 군단에 출장을 나가 있었다. 최룡해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은 김정은의 단잠을 깨울 만큼 중요한 보고였다. 체포된 뺑소니범은 공교롭게 최룡해가 수장으로 있는 총정치국의 선전선동부 소속이었다.

김정은의 특명에 최고 의료진이 총동원됐다. 현철은 42일 만에 눈을 떴다.

하지만 뇌를 다쳐 발음도 어눌했고, 거동도 불편했다. 현철은 요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다가 그해 말 싱가포르까지 가서 고막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사고 전만큼 멀쩡해지진 않은 것 같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이 무렵 평양엔 현철과 김여정이 결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위의 사건은 최룡해에 대한 김정은의 신뢰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최룡해가 누구에게 밀려났다는 식의 보도가 가끔 나오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최룡해는 빨치산 최현의 자식이다. 최현은 글도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김일성 독재를 구축하는 데 으뜸 공신 노릇을 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낙점되는 데도 최현이 큰 역할을 했다.

최룡해도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살았고, 지금은 김정은을 보좌하고 있다. 대를 이어 김씨 일가를 지키는 ‘백두혈통’의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는 셈이다. 군 경력이 없던 최룡해가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이 된 것도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이 쿠데타를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과정을 거쳐 권력을 확실히 장악할 때까지 2년 동안 최룡해는 군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달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최룡해는 기존의 6개 보직에 더해 2개의 보직을 더 받아 총 8개의 감투를 썼다. 정치국 상무위원, 정무국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 주요 보직을 두루 꿰찬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북한에서 최룡해는 최현과 빨치산 출신의 아내 김철호 사이에 태어난 확실한 빨치산 2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에서 수십 년 동안 기자로 일한 탈북자는 “최룡해는 김철호의 아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광복 후 최현이 38선 경비여단장으로 있던 때 황해도 현지 여성과 눈이 맞아 1950년에 태어난 자식이 최룡해임을 빨치산 동료들은 다 안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가 최현의 아들이고, 김철호 손에서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최룡해는 젊었을 때 미모의 처녀들을 기쁨조로 뽑아 김정일의 파티를 흉내 내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47세 때인 1997년부터 무려 5년이나 자강도 랑림의 임산사업소에서 고된 ‘혁명화’를 거쳐야 했다. 이때 그는 북에선 김씨 혈육이 아닌 한 누구라도 철저히 몸을 낮춰야 산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다.

북한 2인자의 외아들인 현철이 당 기관의 말단 직책에서 10년 넘은 낡은 겨울옷 차림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도 아버지의 뜻일 것이다. 김정은과 동갑내기인 현철은 앞으로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3대 세습 국가에선 3대 세습 문지기도 별로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최룡해#최현철#최현#백두혈통#노동당 제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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