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사라진 맨해튼의 마차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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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정책공약을 총괄한 사람은 ‘10년의힘’ 좌장을 맡은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었다. 올 2월 발족한 10년의힘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100여 명의 전직 관료들이 참여한 문 후보 정책캠프였다. 경제는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이, 외교안보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맡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 후보 정책캠프를 이끈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은 고문을 맡아 외곽에서 뛰었다.

안 보이는 ‘10년의힘’

10년의힘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체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집권 즉시 추가경정예산을 풀어야 한다고 제안해 받아들여졌다. 당선 후에 추진할 ‘12대 정책과제’도 문 후보 손에 건네졌다. 변양균은 대선 후 발간한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10년의힘 멤버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10여 년 전 노무현 정부 때 자신이 주도한 장기 혁신과제 ‘비전 2030’ 정책도 녹아 있다.

1900년과 1913년 부활절 날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의 길거리 모습을 비교한 책 속의 사진이 흥미롭다. 불과 13년 만에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었다. 변양균은 묻는다. 맨해튼 거리 풍경이 급변한 것은 금융·재정 확대정책 때문에 나타난 ‘수요확대’일까? 아니면 기업가의 공급혁신으로 발생한 ‘수요창출’일까?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는 미 포드사가 1908년 대량 생산에 성공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서 마차를 빠르게 대체했다. 기업가의 혁신이 세상을 바꿔 놓은 것이다.


변양균은 30년 경제 관료 생활을 금융·경제정책을 혼합한 케인스식 수요확대 정책에 매달려 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기업가가 부단히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단기 금융·재정정책에 의존한 경제정책 틀에서 벗어나 슘페터식 기업가혁신을 추구해야 우리 경제의 구조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꾀할 수 있으며 일자리도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기득권 저항으로 좌절됐다고 회고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의 실패를 문재인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10년의힘 사람들은 문 정부 출범 초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과 대통령집무실의 일자리현황판 설치 등 보여주기 이벤트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소득 주도 성장 명패를 달고 정부 주도 임금 인상에 매달려 골든타임을 보낸 데에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오죽하면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해답이 없는 성장정책, 규제개혁 부재를 지적하며 답답함을 호소했을까.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유연성을 넓히고 경제 주체가 창의와 혁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할 때 변양균이 만든 노무현의 경제교과서는 뒷전으로 밀려 있는 것 같다.

경제엔 ‘쇼’가 안 통한다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고 친(親)노동계 인사인 김대환 인하대 교수를 노동부 장관에 발탁해 노동개혁을 주도한 것은 진보 정권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 문 대통령 주변에 대학교수들이 넘치지만 10년의힘 출신은 반장식 일자리수석뿐이다. 이제부터라도 혁신성장의 페달을 세차게 밟아야 한다. 경제를 잘 몰랐던 전두환 대통령 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경제는 최고 호황을 누렸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라는 3저(低) 호황 덕도 봤지만 김재익 경제수석 같은 뛰어난 참모를 발탁한 대통령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김재익 같은 경제 참모가 있는가.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문재인#문재인 정책공약#이영탁#국정기획자문위원회#변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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