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기자의 글로벌 뷰]우크라이나서 한반도까지… 美 vs 中러, 커지는 ‘新냉전 벨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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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기자
구자룡 기자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을 저지하겠다. 미국이 급하게 철수하면 공백 상태가 생겨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를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1일 발표)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아프간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교두보로 삼으려는 것이다.”(중국 관영 환추시보 23일 기사)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막기 위해 지상군을 추가 파병하겠다고 밝히자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가 자국 견제용이라고 비난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해외판 소셜미디어인 샤커다오(俠客島)도 같은 날 “아프간은 실크로드의 중심에 있는 전략적 요충 국가”라며 “중국 러시아 인도는 아프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미국은 ‘역외 국가’”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미국이 아프간에 추가 파병하는 것은 ‘제국의 무덤’에 다시 빠지는 것이자 아프간 주변 국가의 전략적 이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2001년 9월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간에 파병해 16년간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미국과 중-러는 아프간에서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중국이 탈레반 대표단을 베이징(北京)으로 초청해 내전 종식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테러 반대’라는 명분에서는 미국과 중-러가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의 아프간 철군 계획을 뒤집고 갑작스럽게 추가 파병을 결정하자 중-러가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을 콕 집어 탈레반에 배후 기지를 제공해 왔다고 압박하자 중국은 우방인 파키스탄 편을 들고 나섰다. 미국-인도 대 중국-파키스탄의 상호견제 전선도 강화될 조짐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파키스탄이 테러리스트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미국 주장과 관련한 질의에 “파키스탄은 오랜 기간 테러 척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과 큰 희생을 감내해 왔다”고 파키스탄 편을 들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미국이 앞으로 탈레반 대응을 위해 파키스탄을 더욱 압박하면 파키스탄은 더욱 중국과 밀착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테러’를 명분으로 시작된 미군의 아프간 파병과 추가 파병을 중국과 러시아가 지역 패권 다툼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대립과 유사하다. 북한 핵 저지를 명분으로 한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은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을 깨뜨린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러시아가 이를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유럽 일본이 뭉쳐 중-러에 맞서는 이른바 ‘신냉전 벨트’는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에서 한반도까지 폭넓게 펼쳐지고 있다. 중국이 2014년부터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시설 설치를 확대하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대항했다.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들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공화국을 합병한 뒤 미국과 서유럽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하자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품앗이 지지’에 가깝다.

2011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반군과 정부군을 지지하며 대립할 때 중국은 한동안 ‘내정 불간섭’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점차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도 러시아와의 글로벌 협력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간 냉전 벨트는 이념과 체제를 따라 나타났지만 신냉전 벨트는 특정 기준이 없이 국익을 위해 나타나고 있는 점이 차이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으로 미-러가 손잡고 중국을 제어하는 ‘연아제중(聯俄制中)’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 100여 일 만에 신냉전 벨트가 확대되는 형국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중러#미국#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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