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선 먹어도 된다는 피프로닐 계란, 네덜란드는 “장기 섭취땐 아이에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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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성분이 나온 ‘살충제 계란’의 안전성을 두고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가 엇갈린 결론을 내린 사실이 23일 확인됐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닭에 사용할 수 없는 살충제 ‘피프로닐’이 검출된 계란을 “매일 평생 2.6개씩 먹어도 건강에 별문제가 없다”고 밝힌 반면 네덜란드 식품소비재안전청(NVWA)은 “오랫동안 먹으면 아이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먹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피프로닐은 세계적으로 닭 돼지 소 등 식용 목적의 가축에게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이다. 국산 계란에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 중 독성이 가장 강하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가장 많이 나온 계란(kg당 0.0763mg)을 기준으로 1, 2세 아이는 한 번에 24.1개, 성인은 126.9개까지 먹어도 되며, 평생 매일 먹어도 2.6개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NVWA는 피프로닐 성분이 이보다 적은 kg당 0.06mg을 초과한 계란에 대해 “아이들이 장기간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예방적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먹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식약처와 정반대의 결론이다. 이 때문에 유럽 최대 계란 수출국 네덜란드는 농장 180곳을 폐쇄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계란을 모두 폐기했다. 또 일부 농장의 닭까지 도살 처분하는 강수를 뒀다. 한국과 달리 피프로닐 검출량에 따라 △먹지 말아야 할 계란 △아이는 먹지 말아야 할 계란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계란으로 나눠 소비자가 취해야 할 조치를 설명했다.


이런 차이는 두 나라 정부 간 인식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살충제 계란을 한 번에 섭취했을 때 위험한 기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장기간 섭취했을 때의 위험성이다. 식약처 발표는 이론에 충실했지만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노상철 단국대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인체 위해성이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우선 그 성분에 대한 노출을 피하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며 “몇 개까지는 먹어도 안전하다는 건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아직까지 살충제 성분을 장기간 섭취할 때 인체에 생길 수 있는 영향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동물실험 결과로 그 영향을 추정할 뿐이다. 실제 식약처의 위해 평가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노 교수는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해 장기간 섭취 시 영향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발표했어야 했다”며 “살충제 계란을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건 관리 부실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농장주들의 자발적 신고로 ‘살충제 계란’ 문제가 불거진 점도 한국의 상황과 사뭇 다르다. 농장주가 직접 농약을 사서 뿌리는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농장주가 고용한 방역업체가 농약을 살포한다. 이런 방역업체 중 일부가 농장주 몰래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을 썼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파악한 농가들이 스스로 정부 당국에 이를 신고했다.

네덜란드는 애초 친환경 농약을 주로 쓰기 때문에 업체가 속인 피프로닐 외에 다른 잔류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화학적 방역과 농약이 일상화돼 있어 계란을 검사할 때마다 새로운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1979년 이후 사용이 금지된 DDT까지, 지금까지 검출된 살충제 성분은 총 8종에 이른다.

김호경 kimhk@donga.com·이미지 기자
#피프로닐 계란#네덜란드#살충제 계란#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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